한국 전통 죽필 문상호 전승인을 찾아서
한국 전통 죽필 문상호 전승인을 찾아서
  • 신문식 시민기자
  • 승인 2015.04.1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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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계승하고 보존하는 것이 나라사랑 첫걸음

▲ 전통 붓 문상호 전승인.
장인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공하여 그 일에 정통하려고 하는 철저한 직업정신을 말하는데 도전정신과 강인한 집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어렵고 외로운 길이다.

전통 붓 전승인 문상호 장인은 우리 옛 선조들이 사용했던 붓들을 재현하는 장인이다. 붓을 제조하는 일에 전념하거나 한 가지 기술을 전력투구하여 그 일에 정통한 사람을 ‘장이’ 또는 ‘장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 속에 내면화 되어 있는 철저한 장인정신과 직업윤리의 한 표현으로 전문가를 말하는 것이다.

요즘 경제제일의 사회에서 전통 붓 전승인 문상호 장인은 수익성도 없는 붓 만드는 일을 좁은 방 먼지 날리는 곳에서 정신일도(精神一到)하며 외롭게 작업하고 있었다. 조상들의 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우리사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정신을 장인정신(匠人精神)이라고 한다.

나는 ‘전승인 문상호’라는 간판을 보고 어떤 사람일까 하고 인터넷에 문상호 장인을 검색해 볼까 했는데 직접 만나보니까 아주 부드럽고 친절했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물었더니 "장인이라고 불러요. 장인이 나쁜 말이 아니여"라고 답했다.

▲장인(匠人)은 붓을 제작하게 동기가 있었는가?
-고향이 장흥이다. 장흥에서 1969년에 광주로 이사를 왔다. 그 때 이사 온 집이 이집인데 그때는 12가구가 살았던 큰집이었다. 그 12가구 중에 한분이 붓을 만들고 있었다. 그분이 붓을 만들어 보라고 해서 처음에는 안한다고 했으나 옆에서 보고 하다가 배우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 대나무를 쪼개서 만든 붓을 설명한다.
▲그럼 장인은 그분이 스승이 되었군요?
-예. 그분은 최유일 스승인데 염소털 붓을 만들고 있었다. 염소털은 냄새도 많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싫어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 동네가 전부 붓을 만드는 동네였다. 그리고 붓을 만드는 사람들이 술도 소주나 막걸리를 먹지 않고 맥주를 먹었다. 맥주는 그 당시 고급술이었다. 붓을 만드는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그 분의 권유에 빠져서 만들게 되었다. 최유일 스승은 박순이라는 스승에게 배웠다.

박순 선생은 당시 큰 붓을 만들려고 중국으로 갔다가 중일전쟁의 위험을 느끼고 귀국하여 백운동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분의 후계자가 최유일 선생이고 나는 최유일선생의 후계자가 되었다. 박순 선생의 후손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

▲그 당시 고급술인 맥주를 마셨다는 말은 경기가 좋았다는 것인가요?
-붓 만들기가 바빴다. 매우 경기가 좋았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붓글씨를 좋아했다. 그러니까 장관이나 도지사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유행했던 선물이 붓과 벼루였다. 그러니까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하면 그 의원들에게 붓을 선물했다. 그 선물을 만들려면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대통령의 하사품은 질 좋은 것은 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한 두 달의 짧은 기간에 3,000개가 넘는 붓을 손으로 만든다는 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선물로 영예를 간직하는 것일 뿐이다. 그 붓으로 선물을 하려면 6개월 전에나 예약을 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한 두 달 전에 예약을 하다보면 기간은 없고 수량은 확보하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해보면 당시 붓 만드는 사람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고마운 사람이었다. 신년이면 꼭 휘호를 써서 액자에 담아 각 시도지사 방에 걸고 하니 고위공직자에서 학교에 이르기 까지 붓을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자연 서예문화가 꽃을 피는 전성기가 되었고 그 당시는 서예경진대회도 많이 개최됐다.

그 때는 상인들이 미리 예약을 해야 붓을 사갈 수가 있었다. 나무나 털도 제 철에 수확해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가 있다. 그런 세상은 앞으로 없을 것 같지만 세상은 돌고 돌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꾸준히 하는 것이다.

▲장인이 창작한 붓은 몇 종류인가?
-특허를 받은 것은 죽필과 고필을 받았다. 원래는 태모필까지 3개를 신청했다. 특허는 다른 사람이 특허를 받지 못해도 먼저 신청을 하면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떤 분이 특허를 받지는 못했지만 태모필을 먼저 신청해서 2개만 특허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옛 선조들의 붓을 문헌을 통해서 재현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승인’이라고 간판에 붙어 있다.

▲죽필은 대나무로 만든 붓이고 고필은 볏짚으로 만든 것인데 태모필은 무엇으로 만든 것인가?
-일본에서는 애기를 낳으면 손을 먹물에 찍고 발을 먹물에 찍어서 금으로 장식품을 만들어 애기에게 선물하는 것이 있다. 애기 첫 머리카락을 잘라서 탄생 붓을 만드는 것을 봤다. 태모필은 신생아의 첫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으로서 기념하기 위한 선물로 하면 좋다.

▲죽필은 언제부터 만들게 되었는가?
-죽필을 만들기는 1992년부터 만들었다. 전통공예대전에 출품해서 그 때 죽필, 계모필, 갈필을 출품했다. 계모필은 닭털로 만든 것이 아니고 큰 털을 뽑고 나면 잔털이 남는데 그 잔털을 뽑아서 만든 것이다. 계모필 한 개를 만들려면 닭 50마리는 잡아야 겨우 한 개의 붓을 만들 정도다. 지금은 털을 면도칼로 쪼개서 만든다.

▲ 설명하는 문상호 전승인.
▲정부나 광주시, 남구에서 박물관이나 전시관 같은 건물을 짓는다는 말은 없는가?
-그런 말을 들으려고 지금까지 한 가지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직자들이 그런 말을 한적은 없다. 예산이 없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나? 깨어있는 사람들이 서둘러 줘야 한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이 시대정신을 살리는 것이다. 관심과 관리를 하지 않으면 코도 베어간다. 독도가 그렇고 이어도가 그렇고 벚나무가 그렇다. 우리 것을 우리가 소중하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몇 년 전에 내고향 장흥군수가 전시관을 짓겠다고 했던 일이 있다. 그러면서 내 집에 있는 모든 작품을 전시관에 헌납했다. 그런데 내 운이 아직 안되었는지 그 군수가 선거법에 위반된 일이 있어서 낙마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후계자는 양성하고 있나?
-후계자는 우리 아들이 할 것이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지금은 한국도로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강원도에서 평생교육원 수강생을 모집해 전수시킨다고 해서 지난번에 갔다 왔다. 다른 지역에서는 야단인데 정녕 내 고장에서는 조용하다.

▲ 진열된 붓.
얼마 전에 증심사 입구의 한국 전통문화관이 있는데 그곳에 가서 내가 강사자격이 있으니 수강생을 모집해달라고 말했더니 그렇게 해보자고 했으나 아직 말이 없다. 10명 이상 돼야 강좌를 개설한다. 문제는 정부에서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려면 후계자보다도 대학에서 전통문화학과를 의무적으로 개설해야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 서예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강운태 전 국회의원 시절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국회차원에서 교육부에 서예시간을 배당했으면 한다고 말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남구 도시재생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전승인 죽필 골목과 진다리 붓 골목을 공방테마거리로 조성해 백운동의 둘레길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 제안에 장인은 찬성하는가?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내집 대문도 철거해버리고 개방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이 보고 느끼고 해보려는 의욕이 생기게 해야 한다. 그래서 대문을 헐어내기로 했다.

전시관은 못 하더라도 확실한 거리만 조성을 한다면 좋을 것이다. 벽화도 좋지만 타일에 여러 가지 문형의 붓을 새겨서 부착하는 것이 오래 보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레길 도로 색깔과 벽만 보면 누구나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향의 도시에서 우리나라 제일의 붓이 생산되고 있는데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타까운 일이다. 경상도는 서예가 학교에서부터 활성화되고 있다. 앞으로 전라도는 예향의 명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행인 것은 일부 깨어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를 알고 지키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에 안도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문화는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먹고 꽃을 피는 것이 문화인데 세상이 어렵고 내가 없는데 의욕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교육부에서 초등학교부터 서예시간을 배당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서예문화를 지키는 첫걸음이다. 초등학생이 붓을 들고 글씨를 쓰려는데 부모의 마음은 자연 애착이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전통을 유지 보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붓을 들고 글씨를 쓰려는 순간이 마음을 바로잡는 순간이요, 마음을 비우는 순간이다.

▲4번의 통화 끝에 겨우 성공을 해서 반갑다. 다음에는 더 좋은 일로 만나길 기대한다. 우리의 공통된 공감대가 빨리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대문을 헐어버릴 것이니까 언제든지 와달라. 다른 것은 몰라도 엽차는 항상 준비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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