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 넉넉한 그늘
장송 넉넉한 그늘
  • 박몽구 시인, 5.18 구속자동지회 회원
  • 승인 2015.03.2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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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관 장두석 선생 영전에-

그를 생각하면 화순 적벽 푸른 물결 지키고 있는
장송 넉넉한 그늘이 함께 한다
온 땅을 삼킬 듯 장마 휩쓸어도
산수유 개화를 막는 꽃샘바람 몰아쳐도
든든하게 뿌리 내려 제자리 지키며
수난을 이겨낸 천년의 역사가 떠오른다

비록 높은 학교 담은 넘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가득 찬 책장을 넘기며 얻은 지식으로
기만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을 지킬 무기라곤 들지 않았어도
뜨거운 가슴 활짝 열어젖혀
그해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이던 탱크를
마을 밖으로 몰아대던 큰 산이 우뚝 선다

자신에 돌아올 대가라곤 바라지 않으면서
생이 저물도록 작은 병 아닌
나라의 내일을 흐리게 하는 부패와
한 사람만을 위해 쌓는 권력을 거부하며
온몸을 바쳐 싸운 사람
아픈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악한 축재의 욕망으로 발린 약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때 묻지 않은 생명에의 갈망
그 안에 숨어 있는 불같은 희망이라는 것을
묵묵히 보여준 사람

제 한몸 아끼지 않고
그가 묵묵히 걸어간 가시밭길 끝에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자유의 새벽이 밝았고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겨레붙이들이
작은 병에게 지지 않고
생명의 뿌리에 톱질하듯 위협하는
약의 검은 유혹에서 벗어나
적벽 맑은 물 모아 영산간 큰 물줄기 이루듯
넘치는 새 생명을 얻었다

일생 동안 남을 위해서는 물 쓰듯 하다가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은 갖지 못한 사람
불같은 희망의 씨 뿌려
죽어가는 사람들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새벽
진땀범벅 웃음 씨익 한번 지으면 그뿐
자신의 병은 한번도 돌봄이 없이
허리 숙이는 법 없는 장송처럼
꼿꼿이 선 사람

다시는 한 사람을 위해 높은 담을 쌓는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외치는 소리 들으며
저 푸른 생명의 실에 칼을 대는 약
넘치는 물질들에 짓눌린 병마 떨치고
스스로 생명의 강줄기 굵게 엮어가는 사람들
하늘에서 보며 넉넉한 미소 짓기를
선생이 선물한 새 생명 약동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제 힘든 시간 내려놓고
불타는 젊음으로 영원히 함께 살아있기를!

*이 시는 민주화운동 지도자이자 전통의학 연구가인 해관 장두석 선생의 서거에 즈음하여 박몽구 시인이 보내온 추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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