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려나보다
봄이 오려나보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2.2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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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만져지는 바람 끝이 부드럽다. 비단 자락을 만지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다시 공원에 나가 걷기 운동을 시작한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한껏 펴본다.
이 겨울이 물러나면 겨울이 진을 치고 있던 자리마다 푸른 풀이 돋아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새들이 노래를 부를 것이고 대지는 온통 푸른 초장으로 변할 것이다.

봄은 지금 지하운동이 한창이다. 나무와 풀뿌리들이 지표 위나 나무껍질 밖으로 싹을 밀어내려고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대지에 가만히 귀를 대보면 봄을 준비하는 분주한 소리들이 들리는 듯하다.
갖가지 꽃 색깔에 맞는 물감을 준비하는 꽃나무 뿌리들, 흙 속에 고랑을 내는 지렁이들의 움직임, 그리고 나무들의 우듬지까지 수액을 밀어 올리는 힘찬 소리들. 온 대지가 봄맞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봄이 오면 나는 맨 먼저 학다리 들에 나가볼 참이다. 논둑에 뾰족뾰족 솟아나는 풀들이며, 멀리 영암 월출산에 어른거리는 푸르스름한 이내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엎드려 들판의 부드러운 흙내음을 맡아볼 것이다.

봄 흙냄새를 가슴 깊이 맡아보면 내 몸에도 생기가 돌 것 같다. 어디선가 지금쯤 종달새는 지난해 불렀던 노래를 암송하며 잊어먹은 곡조가 없는지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어 보고 있을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것이 어디 나뿐이랴. 무엇보다 농부들, 그리고 어민들, 그리고 나무, 풀, 꽃,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들도 봄이 오기를 기다릴 터이다. 봄을 기다린다는 말처럼 감정이 북받치는 말이 또 있을까.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해본다, 무엇을 해본다, 본다. 그래서 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여름, 가을, 겨울은 모두 두 글자로 된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데 봄은 딱 외자로 불린다. 그 옛날 선조들은 필시 봄에 대한 생각이 특별했던 듯하다.

나는 봄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오랜 내력을 짐작해본다. 새로 본다는 말, 그리고 ‘봄이 오면 시작하지, 뭐’ 그런 단순한 말 한 마디조차도 인간이 천지의 운행과 전우주적인 질서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오래 기다려온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이제 그분이 와서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내게 안겨줄 것임을 믿는다. 아침 밥상에는 벌써 겨울 눈밭에서 캐온 배추가 겉절이로 나왔다. 분명 봄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이 바라는 것이란 대체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찾는 것은 거개가 가까이에 있다. 봄이 다시 오는 것은 그러한 깨달음을 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따스한 태양과 부드러운 바람과 언 산골짜기에서 풀려 내려오는 물이 서로 실을 잣듯이 2015년판 봄을 직조하고 있다. 곧 최신판 봄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그 봄을 맞이할 때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낼 것이다. 왜냐하면 봄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보여줄 것이니까.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가버린 내 젊은 날을 기다린다는 것이고, 내 사라진 추억을 기다린다는 것이고, 못다한 꿈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화려하게 보이지는 지도 모른다. 봄은 내가 전에 서 있던 자리, 사랑을 그리워하고, 청운의 꿈을 가슴에 안고, 인생길을 진지하게 출발하던 그때로 데려간다.


온갖 풀들과 새소리와 꽃들과 바람 같은 것으로 나를 둘러싼 채 그리로 데불고 간다. 아, 봄이여. 시방 어디쯤 왔느냐, 고 나는 묻는다. 봄이 오기 전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봄에는 땅 같은 것을 사지 말고 아예 봄을 사버리라고. 몇백 평 땅을 사는 것보다 봄을 사면 봄이 차지한 3천리 강토를 몽땅 사는 셈이 된다고.
봄의 땅을 그대의 몸과 마음으로 껴안아보라는 말이다. 이 땅 온 천지에 봄의 나라가 오는 것을 축하하고 환영하라는 말이다. 신부를 맞을 차비를 하라. 봄이 저기 하얀 버선발로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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