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밤 풍경
평양의 밤 풍경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2.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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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이 촬영한 지구의 밤 풍경을 한 눈에 본다. 서울, 도쿄, 북경, 뉴욕, 파리 같은 대도시들은 숯불에 달구어진 듯 불빛으로 이글이글하다. 북한과 아프리카는 칠흑같이 캄캄하다. 그 쪽에는 숯불 같은 것이 없나보다.
이 사진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북한은 캄캄한 어둠의 나라’라느니 한다. 가난해서 도시에 전깃불을 켤 수가 없어 그렇다고. 맞는 말일 것이다. 한반도의 남쪽은 불빛으로 환한 밤인데 북쪽은 너무나 캄캄해서 그야말로 어둠의 바다로 보인다.
여러 해 전 내가 평양에 갔을 때 고려호텔 44층에서 내다본 평양 풍경 역시 밤에 캄캄했다. 나는 그때 북한의 열악한 전기 사정 따위는 접어두고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 마치 내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구나.
우리가 어릴 적에 마을에 전기 같은 것이 들어오지 않아 밤길을 거닐 때는 등잔에 불을 켜고 그 등잔을 담은 유리상자를 들고 밤길을 다녔다. 추녀에 잠든 참새를 잡으러 다닐 때도 그 등잔불을 이용했다.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밤이면 바느질도 못 한다더라.’ 동네 조무래기들의 노래가 사라지면 그 등잔불 밑에서 어머니는 밤 늦도록 옷을 지었다.
세계의 모든 도시가 불빛으로 찬란한 밤 풍경을 짚어 보며 나는 어깃장을 놓는다. 어떤 나라, 어떤 대륙이 밤에 불을 못 켜 캄캄한 것이 되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고. 평양에서 본 어둠은 옛날 시골에서 우리가 늘 접하던 그런 맑고 정갈한 어둠이었다. 사람들은 그 정한 어둠 속에서 고단한 몸을 눕히고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이었다.
새들은 어둠이 깃들면 숲의 둥지로 돌아온다. 잠들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밤새도록 천지사방에 전깃불을 켜놓고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차를 달리고, 그리고 강을 건너는 다리마다 불빛으로 장식해 놓았다.
나는 이런 대낮처럼 불을 밝힌 ‘밤의 문화’가 싫다. 밤을 지키고 일해야 하는 군인, 소방관, 경찰, 병원 응급실 같은 특수한 곳의 사람들만 빼놓고는 일찌감치 잠을 자는 것이 옳다는 쪽이다. 세계의 큰 도시들이 밤을 대낮처럼 밝혀놓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이 문명이 나는 심히 못마땅하다.
밤에는 불빛을 별들에게 건네주고 지구인들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범세계적으로 권장할만한 일이다. 밤에 환히 불빛을 켜놓았다고 해서 그것을 잘 사는 나라의 표정으로 보는 것은 뭣하다. 그 쓸데없는 불야성을 위해서 석유와 원자력이 얼마나 더 많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새들이 잠드는 시간에 인간도 잠이 들고 새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인간도 깨어나는 것이 자연의 오랜 순리라고 믿는다. 내가 만일 독재로 나라를 움켜쥐었던 어떤 대통령 같은 존재라면 포고령을 내려서 밤 몇 시부터는 온 도시의 불을 끄고 백성들에게 잠을 자라고 했을 것만 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낮에 그만큼 시달렸으면 되었지 밤에까지 돈과 환락에 취하는 것은 분명 문명스러운 일은 아니다. 부드럽고 맑은 어둠이 텐트처럼 쳐져 있는 밤에 그 텐트 높이서 별빛들만 반짝거리는 밤에 그 텐트 안에서 곤히 잠이 들어 있는 사람. 그리고 온 도시에 눈을 어지럽히는 네온사인과 온갖 간판과 상점의 불빛들이 돈을 탐하며 눈을 벌겋게 뜨고 있는 거리에서 비틀거리며 대리운전사에 몸을 맡기고 집으로 가는 술 취한 사람의 모습을 비교해보라.
나는 단연코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어둠의 장막 속에서 잠에 들고 싶다. 시인 오상순의 시가 떠오른다.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밤은 아시아의 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실현이다./… 오! 장엄하고 유현(幽玄)하고 신비롭고 불가사의의 한 아시아의 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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