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본 영화
5년만에 본 영화
  • 믄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1.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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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근 5년여 만에 극장을 찾은 셈이다. 혼자서 영화관 뒷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주시하는 것이 왠지 뻘줌하긴 했다. 지난 한 시대,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살아온 날들을 꼭 집어서 스토리로 만든 영화였다.
새삼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보낸 신산(辛酸)의 날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참 고생들을 많이 하고 살았었구나. 그분들 고생 덕에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구나.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느낌을 갖고 보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국제시장은 우리 앞 세대가 산업화를 이루면서 겪은 고생담을 이야기한다. 그뿐이다. 아쉬운 것은 그렇게 고생해서 오늘을 향유하게 되었건만 우리가 그 고난의 시절에 품고 있었던 열망, 희망, 목적, 협동 들은 지금은 상실한 채 살고 있다는 것,
국기 게양 장면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가슴에 손을 얹던 국가의식 같은 것, 서로 도와주고 네 것 내 것 구별이 심하지 않던 이웃 관계, 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는 헌신, 국가를 위해서 몸바치는 애국심 같은 것들은 아무리 시대가 달라지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해도 버려서는 안될 가치들이 아닐까. 서양 속담에 ‘목욕물을 버릴 때 아이까지 버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버려서는 안될 가치들을 우리는 되찾아야 한다.
나는 국제시장을 보면서 그 시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때는 10년 넘게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아파트도 드물었고, 매연을 함부로 내뿜고 다니는 자가용도 드물었고, 아무데서나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휴대폰도 없었고, 생수도 사먹지 않았지만 가난 속에서 가족과 이웃의 유대는 더욱 도타왔다. 이웃간에 된장도 김치도 나누어 먹었고, 결혼 잔치엔 집집마다 음식을 해갔다.
하지만 오늘 그 시대의 고생으로 풍요로운 물질 속에 살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서로를 섬기는 예의, 서로를 인정하는 덕목은 많이 부족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 병폐가 심해지다 보니 급기야는 풍요를 누리는 사회에서 오히려 증오와 공포가 횡행하고 있다. 잘 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못사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을 미워한다. 우리의 선대가 만들려고 하는 세상은 결코 이런 세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좌파는 영화를 ‘썰렁한 개그와 싸구려 신파로 재포장’한 ‘억지 감동의 선전영화’라느니, 우파는 ‘산업화를 이끈 세대에 대한 경의’라느니 영화를 높고 편이 갈라져서 서로 낯을 붉히고 있다.
그보다 충격적인 것은 20대 젊은 관람객들 상당수는 영화를 “꼭 실화처럼 만들었다”고 평한다는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나라는 내가 보건대 단단히 병이 들었다.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력과 미래를 불안스레 보는 세력 간에 건널 수 없는 강 같은 것이 흐르고 있다.
그 강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살아가면서 지켜가야 할 가치 말이다. 영화감독은 “아버지 세대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했다. 그냥 더도 덜도 말고 그렇게 보면 되는 것을 무슨 선전선동 영화처럼 폄하하는 것은 조무래기들 발상이라밖에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국제시장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쉼 없이 흘러가듯 역사도 미래로 간다. 우리는 단지 역사의 여행자로 잠시 그 열차에 탑승했다가 내릴 뿐이다.
자기가 살고 가는 시대에 충실히 살면 되는 것. 국제시장은 다시 보아도 정치색으로 볼 영화는 아니다. 아버지 세대의 고생담을 놓고 삿대질하는 이 나라의 말자리나 한다는 한 줌 논객들이 티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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