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부자로 살기
가난한 부자로 살기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1.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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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삼시세끼 먹고 살 정도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 한다.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거의 모든 인간의 욕망일진대 가난한 상태로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지 말장난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요약하면 가난한 자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물질적인 욕망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부자라는 것이다. 이 작가의 주장에 시시비비는 그만두고 나의 경우를 빗댄다면 그런 점에서라면 나는 어쩌면 부자축에 들지도 모르겠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사고 싶은 것이 없다. 가끔 책 몇 권 구입하는 것 말고는 아내의 표현을 빌린다면 ‘노숙자’처럼 산다. 그래도 불편한 것이 없다. 기를 쓰고 돈을 모아야겠다든지 하는 그런 욕망이 없다. 그저 하루 세끼 먹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으로 매우 만족이다.
그렇다고 내가 말 그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편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20년이 지난 낡은 집도 있고, 국민연금도 나오고, 이따금 글을 쓰면 수입도 생기고. 먹고 사는 데 다음 달 걱정이 없다. 여기서 가난한 자란 말은 끼니를 걱정할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먹고 살 정도’의 가난을 말하는 것이다.
충장로 같은 데 나가면 거리가 온통 어지러운 광고판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그 간판들 모두가 악을 쓰며 “돈을 가져 오세요”하고 손짓을 한다. 나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리 현란한 간판이나 광고를 마주 해도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냐 하면 사고 싶은 것이 없으니 소 닭 보듯 한다.

젊어서는 식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등골이 휠 정도로 회사에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장래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아마 월급쟁이 주제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부자를 부러워하거나 반대로 경멸하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쪽은 다만 나와 다른 길이라고 여길 따름이다.
살아보니 모자란 듯 사는 것이 부자 못지않게 풍족함을 느낀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부자들처럼 집안을 치장하고, 비싼 외제차를 굴리고, 명품 옷을 입고… 그런 것과는 담쌓고 지내는, 구태여 말한다면 자청해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걷는다고 할까.
엊그제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10여 년 전에 서울 강남의 어떤 재력가가 금괴 1백여 개를 방바닥에 묻어놓고 그 위에 장롱을 얹어 놓은 채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 이 사실을 전혀 모른 가족들은 세를 준 이 집에 불이나 인테리어를 다시 하다가 인테리어 인부들이 금을 발견했다. 인부들은 몽땅 갖고 튀었는데, 어찌어찌해서 되찾게 되어 돈벼락을 맡게 되었다는 기사였다.

국세청은 상속, 증여와 관련해서 세금을 얼마나 물릴지 따지고 있다 한다. 그 재력가라는 분은 평소 돈을 벌 때마다 ‘금보다 믿을 만한 건 없다’며 금괴로 바꾸어 집안에 숨겨두었다는 것. 무려 65억원 어치나 된다. 그냥 가십 기사 같은 이야기다. 아니, 돈의 구차한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 같기도 하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그 돈을 불려 선행에 썼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감상도 얼핏 들지만 그야 부자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방바닥에 묻어 두었다는 대목이 참 재미있다. 금괴를 방바닥에 묻어놓았으니 그 금괴들은 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돈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나 자기 것이 아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돈은 내가 얼마를 가졌건 간에 나는 그 돈을 결국엔 어느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하는 길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돈을 금괴로 바꾸어 방바닥에 묻어두는 것은 암만해도 ‘부자’의 돈 관리는 아닌 것 같다.
또 그런 부자는 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죽은 남편이 아내에게 준 살아 있는 선물이라고 신문은 기사 제목을 달았는데, 생존한 아내는 올해 84세라고 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자여, 세상에는 금괴 같은 것을 방바닥에 묻지 않고도 사는 가난한 부자도 많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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