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세월오월, 그냥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짓밟힌 세월오월, 그냥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 나간채(전남대 명예교수, 광주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4.09.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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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간채(전남대 명예교수, 광주연구소 이사장)
근래에 가끔 들어 온 말이 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말이 태어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러나 그 말 한 마디가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건강하게 살찌우는 양식임을 마음에 다지면서 우리는 행복했었다.

광주정신이다. 나는 지난 봄 이후 광주비엔날레의 요청으로 광주정신을 북돋아 키우는 일에 관심을 갖고 몇 번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그 동안의 소감을 말한다면, 광주정신은 물론 위대하게 빛나는 우리 공동체의 혼이고 얼이고 신명(박은식)이었다.

그러나 산고의 선혈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어린 아이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 이 나무를 푸르고 아름답게 키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데 파행의 날이 금방 다가왔다. 비엔날레 특별전 개막식에 걸기로 한 그림을 정부가 걸지 못하게 압력을 넣자 광주비엔날레가 스스로 걸기를 포기했다. 표현의 자유가 기본인 예술행사에서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미리 알고 기어버리는 굴종의 사태가 벌어짐으로써 광주정신은 뿌리 채 뽑혀 쓰러지고 짓밟히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광주정신의 핵심은 이미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의로운 저항’임을 상기할 때, 광주비엔날레는 한편으로는 광주정신을 키워내자고 외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스스로 이를 짓밟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자행했다.

물론 이 정신을 지키고 키워나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1980년 이후 5월 운동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 혼을 지켜내기 위해 최소한 25인의 청년학생이 생명을 바쳐 이 길을 갔으며, 수많은 민주투사가 피 흘리며 고문당했고 감옥살이를 해야 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이번 사태는 결코 그냥 지나쳐버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적어도 세 가지 일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책임 있는 당사자들이 나서서 진솔하고 절실한 사과로 참회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 권력자나 기득권자들이 보여 온 사과행위는 미숙하고 기만적인 양태를 보여주었다. 그냥 지나가듯, 마이크 앞에서 고개 숙여 몇 마디 말로 끝나는 것이 상례였다. 이제 우리는 그와 같은 천박성을 넘어서야 한다.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정중한 자세로 시간과 장소를 분명히 해서 진지한 과정설명과 결연한 서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이번 기회에 광주비엔날레가 진실로 광주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동체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창설 이후 20년 동안 광주비엔날레가 외형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역사회와 공감하고 원만하게 결합했느냐 하는 점에서는 적지 않은 비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미래 발전방향의 기본은 시민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균형 있고 조화롭게 참여하여 만들어 나가는데 달려있다고 본다.

세 번째로, 쓰러져 짓밟힌 세월오월은 다시 세워져야 한다. 그림 속에 새겨진 광주정신 빛이 우울한 우리 공동체를 환히 비쳐 밝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가 세울 것인가? 당연히 광주가, 광주의 민주시민이 중심이 되어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에 우리는 쓰디 쓴 경험을 통해 지역공동체가 일구어 온 정신적 자산으로서 광주정신의 소중함을 더 굳게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이를 밑거름으로 하여 한국에서 유일하게 혼을 가진 도시 광주답게 정의로운 생명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독립 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던 박은식 선생은 말했다, 나라가 망해도 신명이 살아있으면 다시 세울 수 있다고. 광주정신의 무게를 여기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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