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서울대 강연에서
시진핑의 서울대 강연에서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4.07.0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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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의 모교인 칭화대학에 멋진 옷을 입고 가서 강연을 했다. 강연의 절반 정도는 중국어로 나머지는 한국어로 강연했다. 그 강연 끄트머리에 칭화대학 학생들의 질의도 있었다. 보기에 참 좋았다. 외교의 전법을 보는 것 같았다.
중국학생들도 감동을 받았는지 박수도 많이 치고 중국 언론도 호의적인 동정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얼마 전 시진핑 주석이 마침내 한국을 방문했다. 어딘가 말수가 적지만 속이 깊어 보이고, 진실성이 있어 보이는 표정에 호감이 갔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수더분한 인상이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해서 보여준 일거수일투족은 우리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한 마디로 한미일 연합에 끼지 말고 중국에 연합하기를 바라는 듯한 언행에서 한국은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한중 정상 간에 무어라 더 자세한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모르지만 태평양 저 멀리 있는 카우보이와 어깨동무할 것이 뭐 있느냐, 오랜 선린 관계인 이웃 중국과 손잡자고 그 뭉툭한 손을 내밀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한데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 것이 또 있었는데, 보기에 보통 일 같지가 않았다.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방문설을 제치고 서울대로 가서 강연을 했다. 왜 그랬을까. 고교시절 수능성적이 가장 좋았던 그룹들이 몰려 있는 서울대로 가서 한국의 가까운 미래 세대가 될 그 학생들의 눈빛에 한번 맞서서 눈싸움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시진핑 주석은 서울대 강연에서 26번이나 박수를 받을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대단한 박수 갈채였다.

그런데 강연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중국은 고래로 한국과 우방으로 지내왔고, 임진왜란 때는 한중이 연합하여 일본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압권이었다. 정말 그랬을까? 중국 사람들이 한국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무척 좋아한다, 한국과 중국이 문화 교류를 확대하여 우호를 다지는 것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도 했다. 그런 뜻에서였는지 그 대학생 100명을 중국으로 초대했다. 정말 그럴까?
강연이 끝나고 누구 한 사람 질문도 없이 시진핑 주석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에 묻혀서 퇴장했다. 왜 어느 누구도, 그 학생들 중 아무도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분명히 손을 번쩍 들고 마땅히 질문을 했어야 했다.

좋은 이웃이 되려면 이웃간에 좋은 담장을 쌓아야 한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urs)는 시의 한구절(Robert Frost)도 있는데 한국과 중국 사이에 좋은 이웃이 되려면 걸림돌인 북한핵을 치워야 하지 않겠느냐?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중국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는 방영이 안되고 암시장 같은 인터넷에서만 클릭만 할 수 있다는데 공중파에서 방영할 생각은 없느냐?
적어도 이 두 가지 질문 같은 즉 한중간의 국제외교적인 측면과 문화교류 측면에서의 양국의 소통을 구하는 질문들이 어떤 질문이든 반드시 청중인 학생들 사이에서 나왔어야 했는데 열렬히 기립 박수를 치느라 그만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시진핑 주석이 그 대학에 가서 한국의 미래세대에게서 무엇을 읽고 갔을까 하는 것이다.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고 중국이 우리를 혹여 만만하게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저어된다. 중국이 한사코 팔을 잡아당기면 끌려올 것 같은 나라 쯤으로 한국을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그 나라를 보려면 그 나라 청년들의 눈빛을 보라 했는데, 박수만 치는 한국 대학생들에게서 시진핑은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보통은 환대를 받고 가면 곧바로 “귀국 방문 중 환대해주신 한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장을 보내기도 한다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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