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자러 가는 아내
잠 자러 가는 아내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4.05.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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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약간 치매기가 있다. 병원에서 지어준 일주일 복용약을 이삼일에 다 들어버리곤 한다. 누가 곁에서 수발을 들지 않으면 생활이 영 엉망이 되어버린다. 하는 수 없이 간병인 아주머니를 일주일에 4일 고용해서 돌보아드린다.
하지만 그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 나머지 3일은 아내가 친정집에 가서 수발한다. 그런 날은 아내가 밤에도 장모님을 돌본다. 잠을 함께 자 주는 것이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중히 아픈 데가 없으면 대개 85세에서 90세 안팎까지 사시는 것 같다. 대체로 옛날에 비해서 퍽이나 장수하는 편이다. 어렸을 적 친척집에 시집 오는 신부가 예단의 한 가지로 베갯모 양 쪽에 수(壽), 복(福) 혹은 부(富), 귀(貴)라고 수를 떠 온 것을 본 일이 있다.
시집 오는 새댁에게 일생의 간절한 소망은 수복과 부귀 같은 것이었다. 그 아름다운 베갯모의 소망은 적어도 수복에서만큼은 이제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대단한 성취다.

한데 문제는 장수하시는 분들 중의 상당수는 치매를 앓거나 다른 노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노환에 시달리다 보면 당신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짐은 물론 수발하는 가족들의 노고도 증대된다.
자손들이 경제적으로 부담능력이 되는 경우는 덜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직접 개호해야 하니 그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놓고 불평을 할 수 없는 효도라는 이름의 노고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 신자 한분은 오형제나 되는 자식들이 다 마다해서 막내며느리가 치매가 심한 89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몇 해 전까지는 치매 걸린 시아버지 수발에 머리가 다 쇠었을 정도다. 시어머니는 아직도 몸은 정정한 상태다. 며느리는 근 10년 넘게 치매 상태의 시부모 뒷바라지를 하느라 인생이 고달프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보다 더한 경우도 흔하다. 글쎄, 베갯모의 수복이 며느리를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하여튼 늙기도 힘들거니와 모시기도 고단한 세상이 되었다. 이런 문제를 세금 거두어가는 국가도 어쩌지 못한다.

나라가 독일 같은 부자가 되면 좀 낫겠다 싶긴 하지만 존엄을 지키며 늙어가게 모시는 것과 며느리의 수고를 덜어 주는 그런 묘책은 찾기가 쉽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인구 통계에 의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뭐, 향후 20년이 지나면 65세 넘은 어르신들이 인구 열 명당 세 명이 넘는다던가.
지금 젊은 세대들은 어느 자료에 의하면 수복을 더 받아 보통 100세 가까이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와우, 그때쯤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수복의 나라가 될 것 같다. 오래 살아 좋긴 하겠지만 삶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그런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은근히 두려운 마음도 든다.

영국 시인 엘리어트 시에 너무나 오래 살아 있는 노파가 내 소망은 죽는 것이라는 내용의 싯귀가 있다. 너무나 오래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절절이 호소한다.
지금은 베갯모에 수, 복이 새겨진 베개는 안 나오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늙어가는 세상의 모습이 좋아 보이기도 하건만…. 친정집에 간 아내는 오늘도 부숭숭한 머리로 아침에 귀가해 침대에 쓰러져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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