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권력을 보다
얼어붙은 권력을 보다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4.04.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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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를 크게 뉘우치게 한다. 그 비극은 해운회사, 선장, 선원, 정부의 구조 시스템 등의 어느 한 위치에서 어느 한 가지 매뉴얼만 지켰더라도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은 여러 요인이 합쳐져서 터진 사건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는 깨닫고 있다.
어린 혼들을 바다에 묻은 엄청난 비극 앞에서 우리는 ‘만일 배를 증축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배가 물결 센 맹골 항로로 가지 않았더라면’, ‘만일 배의 선장이 직접 운항을 했더라면’, ‘만일 승객들에게 빨리 탈출하라고 말 한 마디만 했더라면’, ‘만일 구조 시스템이 일사분란하게 대응했더라면’ 하는 식으로 수없이 많은 ‘만일’을 떠올리게 된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세월호는 만에 하나의 비율이라는 일상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하나의 요인들이 한데 모이고 모여서 일어난 사건이다. ‘만일’(가정)이 연쇄적으로 고리지어 나타나는 탓에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말이다. 그 만일은 물론 상식과 매뉴얼을 무시한 데서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고백하건대 나는 처음에는 선장과 선원들을 욕하다가, 구조 시스템을 욕하다가, 해운회사를 욕하다가, 정부를 욕하다가, 그러다가 문득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사실상 세월호의 확장된 표현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각 분야의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계속 생각해본다. 대체 한국이라는 나라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들의 집단이다. 이 비극을 희석시킬 염려가 있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우리의 반성은 국민 전체로 퍼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천서 제주 가는 배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가 일대 개혁을 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런 비극이 여러 차례 되풀이되어 왔는데, 이번만은 국민의식이 다른 것 같다. 이 비극을 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권력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보라. 정부, 국회 같은 권력기관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이처럼 권력기관, 언론, 단체들이 납작 엎드려서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국민이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음을 목도한다.
그렇다면 이번 비극을 계기로 권력의 주체인 국민이 달라져야 나라가 달라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늦더라도, 비효율적이라도, 비용이 더 들더라도,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나’들이 자신의 생활에서 매뉴얼 지키기를 권력의 행사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촛불시위를 해도 꿈쩍 않던 사회가 세월호의 비극을 겪으며 모두 조신하고, 착해지려 하는 모습이다. 말조심은 물론이고 사회가 깊이 자숙하는 분위기다. 트위터 같은 것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정쟁을 일삼던 국회의원들도 다들 조용하다.
우리는 이 마음을 가지고 ‘모든 나’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비극을 승화시켜가야 한다. 만일 다시 이런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것이 꽃피는 4월에 져간 어린 혼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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