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살아남기
이 땅에서 살아남기
  • 문틈/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4.04.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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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면 나름대로 생존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사건에서 얻은 결론이다. 물론 모든 것, 자연물과 인공물,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상대할 때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 어쩌면 인간의 문명은 이 매뉴얼 만들기의 진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데 이 땅에 사는 우리는 특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견해다. 그 실례를 다 들기는 어려운 일이고 당장에 진도 앞바다 참극 같은 것을 피하려면 승선한 후 위기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하라는 매뉴얼 따위는 거의 있으나마나 하므로 아예 배는 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가령 불행한 여객선 사고가 내일이라도 어디서 또 일어난다 해도 구조신고, 승객 탈출, 구조 활동의 전 과정이 매뉴얼대로 진행될 것 같은가 말이다. 천만에 말씀이다. 그러기에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제 나름대로의 생존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편을 이용할 경우엔 날씨, 승선 선체의 사양, 선장의 경력, 해운회사 이미지 등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여객기도 조종사가 어떤 사람인지, 대타로 운항하는 사람인지, 노래방에 들어갈 때는 비상문과 방화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먼저 챙겨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세부사항을 알고 이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다중 시설이나 교통기관을 이용할 때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가장 좋은 방책은 교통기관이든 시설이든 간에 그것을 책임지는 예컨대 조종사나 운전기사의 경력, 방화시설 점검확인 같은 것을 사전에 이용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본디 매뉴얼이라는 것은 위급시 지키도록 되어 있는 가장 최상의 룰인데 이것을 지켜야 할 사람들이 무시한다는 데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선장이 그의 동료들과 함께 승객들을 배 안에 남겨두고 먼저 탈출하는 것 같은, 매뉴얼 무시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사회에서 아무리 훌륭한 매뉴얼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아예 배는 애시당초 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어디 배뿐이겠는가. 버스, 택시, 기차, 여객기…….예를 들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겠다는 말이나 한가지라고 비웃을 사람도 있을 법하다. 맞다. 내가 이렇게 억지를 부려 주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는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는 곳곳이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라고밖에 할 수가 없어서다.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자 도생할 수밖에 없다. 각자도생, 그것이 생존 매뉴얼이다.
큰 사고를 당하고도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라.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배는 아무리 큰 배라도 이용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배가 조난을 당해 다수의 인명피해가 난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가능하면 비행기도 타지 않는 것을 권하고 싶다. 듣기에 우리나라 여객기는 원래 좌석보다 더 늘려서 사람을 많이 태운다고 한다. 제주 가는 어떤 여객기는 제한된 한계를 넘게 화물을 싣고 다니다 경고를 받은 일조차 있다.

왜, 어째서, 우리는 현대 문명의 기기를 이용하는데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족속이 되었을까. 우리가 겪어온 역사에서 매뉴얼대로 하면 불편하고 때로는 손해 본다는 생각이 전승되어서가 아닐까.
우리도 일본처럼 매뉴얼 편집증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게 매뉴얼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렇더라도 나는 제주까지 가는 배는 평생 탈 생각이 없다. 수학여행을 하지 말자는 견해와 같은데 어쨌든 먼 날의 우리 후손들이라면 몰라도 현재 우리나라 배는 목숨을 맡기고 탈 형편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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