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의 원칙과 곡선의 삶
직선의 원칙과 곡선의 삶
  • 이상수 전 호남대 교수, 객원기자
  • 승인 2014.04.1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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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수 전 호남대교수/시민기자
바른 말은 늘 옳으나, 늘 효율적인 건 아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을 모른 채 바른 말만으로 일관하고, 고집스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영리하거나 지나치게 투명한 것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지장이 없다는 전제조건 아래 사안에 따라 굽이굽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적과의 싸움에서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강력한 투쟁을 금했다. 즉, 완곡한 방식으로 우회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노자는 약하게 보이고 겸허하며 낮은 자리에 있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무기력함이나 무능함의 표현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의미를 담고 있는 사상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장차 빼앗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라(將欲奪之, 必固豫之:노자 제36장)” 이 말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노자의 사상은 권모술수로, 군주의 통치술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어로 말하면 원칙도 있어야 하고 유연성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원칙만 있고 유연성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반대로 유연성만 있고 원칙이 없어도 안 될 것이다. 양자를 결합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원칙’을 강조한 것이 하나의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원칙’은 우리들이 만든 것이다.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원칙이 맞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 때마다 우직하게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인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해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자연이나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곡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직선이 우리 주위를 계속 옥죄고 있다. 이러한 직선은 인간들처럼 욕망이 본능을 넘어서는 탐욕적인 생명체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이다.

출근길, 어디를 보아도 온통 직선들뿐이다. 인위적으로 창조한 선, 통제와 편리함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인간이 만들어낸 직선은 꺾이거나 굽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직선으로 만든 4각의 틀 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허우적거리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경직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삶에도 직선은 없다. 앞만 보고 달리는 인간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의 삶도 직선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에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실패가 없었기에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도 있고,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 그런 사람들에게는 삶의 향기, 인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한 번도 아파보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직선은 ‘개발과 성장’이라는 코드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속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곡선보다는 직선이 더 강조되고 의미가 부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승자는 곡선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근래에 와서 승리의 해법으로 직선에서 곡선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통과 현대,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꾀해야 한다. 공간도 분할하는 직선, 직선의 딱딱함을 보완하는 곡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최근 건축도, 자동차도 곡선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삶에 있어서도 자연이 준 선물인 곡선의 참뜻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원칙’이 항상 선(善)은 아니다. 잘못된 ‘원칙’, 잘못된 ‘약속’이라면 이해 당사자들과 논의를 거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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