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공인이시라고요?
뭐, 공인이시라고요?
  • 문틈/시인
  • 승인 2014.03.1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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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텔레비전을 안 보고 산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연예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시끌벅적한 이야기를 하며 노는 본새가 눈에 거슬려서다. 어머니는 그런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시는 듯하지만 심성이 그런 탓인지 나는 도무지 그런 꼴을 눈꼴 시러워서 봐 줄 수가 없다.
그들끼리 텔레비전에 나와서 하는 말투를 보노라면 어이가 없다. “섹시해보이시네요.” “동안이시네요.” 극존칭을 쓰는 말투를 한번 들어보시라. 예법을 지킨다면 남 앞에서 자기 가족을 이야기할 때, 같은 직장 동료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저런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서 말할 때는 극존칭을 쓰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실례가 될 터이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여대며 그들끼리 극존칭을 쓰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잘못한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나 참, 하의 실종이니, 섹시하시다느니, 하는 저속한 말들도 듣기 영 거북하지만 더 속이 뒤틀린 말은 ‘일반인’이라는 말이다.
어떤 연예인이 일반인과 결혼했다느니, 이게 무슨 어법이고 말인지 다들 잘 이해가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연예인이 연예인이 아닌 사람과 결혼했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하는 모양인데, 그 말 속에는 다분히 연예인을 특별시하는 관점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일반인이라니, 그런 말법이 어디 있는가. 만약 꼭 그런 말투를 써야 한다면 연예인과 비연예인 정도로 쓰면 옳을 터이다. 연예인들이 자기들을 ‘공인’시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공인이라니, 지금 그런 것 없어진 지 오래됐다.
이제는 SNS가 등장하고부터 누구나 다 공인이라고 하게 생겼다. 예컨대 트위터에 말풍선을 한번 띄우면 다 공인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거기에 사회적으로 튀는 말을 날리면 더 빨리 공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표를 찍어서 선출한 공무직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먹고 살기 위해서 텔레비전에 나와 이상한 말들을 쓰는 연예인을 공인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 순번이 되었을 때 간호사가 말한다. “다음 분 들어가시게요.” 연예인들이 경우에 없이 극존칭을 남발하다 보니 이런 데까지 말이 꼬여서 오염된 탓인가 한다.
대중매체에 나와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떠드는 말투가 고병균병원체처럼 사회 전체로 전염되는 일을 막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말에는 혼이 있으니, 나는 이것을 ‘언령(言靈)’이라고 부르는데 대중매체에서는 특히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 말하는 순간 말에서 언령이 튀어나와 당신을 사로잡는다. 연예인이 자기를 공인이라고 생각하든 말든이지만 혹여 정말 공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언어 사용에 유의할 일이다.
그것이 어디 연예인에만 해당되는 것일까보냐. 말에 대한 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필요하다.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다. 천냥 빚은 못 갚겠지만 말은 덕을 쌓는 데도 썩 좋은 수단이다.
말 공양을 잘하는 것은 신언서판의 중요한 덕목이다. 착한 말을 해가지고 해를 입었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편히 하는 것인지를 안다면 그렇듯 함부로 역겨운 말을 쓰지 않으리라. 물론 공인이라는 말도 그렇게 작작 쓰지는 않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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