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을 너무 일찍 떠뜨렸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떠뜨렸다
  • 문틈/시인
  • 승인 2014.03.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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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향해 삼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비아냥거렸다. 너무 일찍 부자티를 낸다는 것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너도 나도 줄서서 해외 여행에 나섰다.
갔다 와서 “거, 어디라고 하더라. 거기도 가보았고, 거, 어디라더라. 거기도 가보았고.”하는 증명사진 여행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어쨌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몸소 실증해보는 즐거움을 많은 국민들이 맛보았다.
그때 나도 부모님께 효도 여행을 해드린답시고 돈을 모아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을 한번 구경시켜드릴 준비를 했다. 남들처럼 효도를 한번 폼나게 한다는 생각으로 아버지께 “다들 해외여행을 가는데 미국 한번 구경하고 오십시오.” 했다.

아버지 말씀이 “미국 가려면 한국 돈을 가지고 가는 것이냐?”하고 물으셨다. “아니요. 미국 달러를 사가지고 가야 해요. 우리 돈은 안 통해요” 나는 아버지의 속도 모르고 답했다. “ 그럼 안 갈란다.” 하고 딱 말씀을 끊으셨다.
무슨 말씀인고 아버지 말씀을 더 들어보니 당신은 이 생전에 한 번도 미국 달러를 벌어본 일을 한 적이 없으시단다. 달러는 수출기업에서 종사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돈인데 내가 무슨 낯으로 그 돈을 쓴단 말이냐. 그러시면서 손을 내저었다.

나는 그때까지 회사 출장이긴 하지만 웬만한 나라들은 가본 처지였기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꽝 하고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럴 것이 어떤 때는 ‘우리 집을 팔면 미화 얼마는 되겠지.’하고 속셈을 하며 촌놈이 우쭐한 기분을 가지기도 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자기 집을 팔아 달러로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은 무엇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수작이다. 가령 우리나라 전체 가구수가 2천만 가구라 치면 그 집을 몽땅 미국이 사준다면 모를까, 자기 집을 달러로 계산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우스운 일이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 말씀을 듣고 깨우쳤다.

우리가 한국 돈을 가지고 외국에 나가도 통하는 시대가 언젠가는 오리라 믿고 싶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런 날은 아니다. 기축통화가 아닌 일본 돈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달러와 안 바꾸고도 통한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우리나라는 아직 부자가 아니고 그러므로 외국에 나가서 귀한 외화를 펑 펑 쓸 형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 경제가 미국이나 중국이 기침을 하면 독감에 걸리는 것을 몇 번 보았다. 그렇게 수출로 먹고 살 수밖에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아낄 것을 아낀다면 지금처럼 죽기 살기로 수출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다.
수년 전 일본에 갔을 때 한국이 일 년에 먹고 남기는 음식만 줄여도 수십억 달러어치는 될 거라던 이야기를 들었었다. 나라 안에서 상당 부분 수출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시스템이 모든 분야에서 낭비를 전제로 하고 짜여진 듯한 느낌이 든다. 낭비가 경제를 살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식량자급률이 겨우 27%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분수를 모르고 흥청망청 샴페인을 터뜨리는 일은 재고해볼 일이다. 나라 경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해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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