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과 상석, 그리고 갑질
국회의원과 상석, 그리고 갑질
  • 문틈 시인
  • 승인 2013.12.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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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군데 망년회에 참석했다. 송구영신의 회고와 희망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는 좋은 자리였다. 참석자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건배사를 할 때는 오랜만에 폭소를 터뜨렸다. 재치있는 건배사들이 계속되자 망년회는 갑자기 즐거운 잔치 분위기로 변했다. 맛있는 음식과 정겨운 환담이 분위기를 달구었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유독 건배사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자, 술잔을 듭시다. 유달산을 향하여 위로, 삼학도를 향하여 앞으로, 건강을 향하여 입으로” 참석자들이 모두 따라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가족같이 잘 지내자는 뜻으로 내가 ‘가’ 할테니 여러분은 ‘족같이’ 하고 크게 복창해주십시오.”하는 건배사도 있었으나 그것은 좀 마뜩찮았다.
망년회 자리에는 중간에 모모 국회의원들도 참석했다. 그래서 망년회 자리는 갑자기 뭐 대단한(?) 모임이 된 것 같았다. 참석자들이 계속해서 돌아가며 손님으로 온 국회의원을 칭송하는 말들을 쏟아내다보니 내 기분은 왼새끼를 꼬는 기분이었고, 박수도 건성건성 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약간 심드렁해졌다. 그 모모 국회의원들의 면면 때문이 아니었다.
왜 망년회에서까지 손님으로 온 국회의원이 상석을 차지하며 그 사람들 중심으로 분위가 바뀌어가는지 나중에는 슬며시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망년회가 끝날 때까지 내내 그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망년회가 손님 환영 모임이 되어버린 모양새였다. 그리고는 듣기 싫은 정치발언도 속출했다.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이런 사람들은 직분이 그런 정치, 행정직일 따름이지 관아의 공식 행사도 아닌 친목 모임에서까지 상석에 앉아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갑질을 한다는 것은 도를 넘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 이런 분들도 저기, 완도나 함평, 충장로 같은 데서 생업에 종사하는 어부나 농부, 상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갑남을녀의 한 사람이라고 나는 본다. 지금 우리가 성취한 민주사회는 사적 모임에서까지 그런 분들이 누구 위에 군림하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그런 분들은 바로 말해서 아랫자리에 가서 있어야 한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그들은 우리가 미션을 일임한 공복에 불과하다. 왜, 예를 들면 동창회 같은 데서도 무대 위에 상석을 만들어, 가슴에 꽃을 달고 몇몇 사람들이 무대 위에 턱 발을 꼬고 앉아 있고, 아래 객석에는 동창회원들이 앉아서 무대를 올려다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 장면은 그야말로 전제군주 시대를 연상케 하는 코미디 같다. 그런 모임들에서는 무대를 없애라, 갑질을 그만두게 하라.
우리가 피흘려 싸우며 이루어낸 민주사회에서 더는 그런 모습을 연출해서는 안된다. 누구도 국민 위에 있지 않고 누구도 국민 아래에 있지 않다. 모임에서 사회자가 이 자리에는 김 모 의원, 이 모 도지사, 박 모 군수가 참석해주셨다고 몇 사람을 주워섬길 때는 정말 어이가 없어진다. 그 누구 말고는 회원이 아니란 말인가. 회원들을 모욕하는 행위다.
관직의 장은 관직에서 자신의 임무를 할 때만이 국회의원이요, 장관이요, 도지사일 뿐이다. 우리는 더, 더, 평등해져야 한다. 스위스나 네덜란드에서는 서로 행정의 장이나 국회의원직을 안하려 한다고 한다. 힘들고 자기 시간을 빼앗기니까.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도 관료사회의 권위를 없애려 한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누구든지 위가 되려는 자는 아래 앉아라. 제발 그 가면 같은 권위의 탈을 벗어던져라. 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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