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안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 문틈/시인
  • 승인 2013.12.1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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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방이라고 볼 수 있을까. 움직이는 방이라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좁은 공간 안에 함께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무뚝뚝한 표정으로 짧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뻘줌하기조차 해서 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는 아무도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낯모르는 사람끼리 하는 목례 비슷한 것조차도 건네지 않는 참 기묘한 공간이다. 그래서 난 엘리베이터 안에서 늘 불편하다. 엊그제는 정말 황당한 일이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마침 바로 한두 걸음 앞에 초등학생 1학년이 될까싶은 여자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놀란 토끼 모양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계단으로 숨가쁘게 도망치듯 올라가는 것이었다. 무엇에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연신 나를 뒤돌아보며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그 여자아이를 보면서 순간 갑자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생각해보았다. 그 조그만 여자아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것이 여자아이를 겁먹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무표정한 표정으로 마주치는 것이 더 어색하고 안좋게 느껴질까 봐 미소를 지어보였는데 그 여자아이는 낯모르는 나이든 어른 남자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에 잔뜩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낯모르는 어른들에게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예사였는데 요즘은 그런 인사도 없어졌을 뿐더러 되레 무서워하는 듯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오늘 만난 선배되는 이에게 말했더니 그 선배는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면 들려주었다.
아파트 같은 동의 엘리베이터에 어린 소녀와 단 둘이 타게 되었는데, 갑자기 어린 소녀가 휴대폰을 꺼내들더니 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나 지금 엘리베이터 안이야. 나와 줘.” 하더란다. 선배가 황당해할 사이도 없이 엘리베이터는 몇 층에선가 멈추자 소녀가 공처럼 튀어나가고 엄마가 놀란 얼굴로 엘리베이터 바깥 낭하에 서있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이 나나 선배만 겪는 일만은 아닌 듯하다. 같은 단지, 같은 동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낯모르는 사람이 뒤에 오거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피해야 돼. 알았지?”하고 집에서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아니면 학교에서 교사가 그렇게 일러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황당한 일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참고로 내 얼굴은 누가 봐도 무서운 얼굴은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다소 풍요로워졌다고 하지만 사람 사이가 이렇게 망가져버렸는데 물질이 풍요하면 무엇이 좋단 말인가. 나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구에겐지 모르게 화가 났다. 그 어린 소녀에게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에게 사람을 못 믿게 교육시키고 살게 되었으니 대체 이를 어쩌면 좋을까.
수년 전에 송두율이라는 독일 무슨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북한은 감옥이고, 남한은 지옥”이라고 했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정말 핵심을 꿰뚫는 말인 것 같다. 그 사람 말처럼 우리는 지금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는 내가 어린 소녀가 앞에 가면 멀리 떨어져 걷거나 피해야 할 것 같다. 순박한 우리나라의 어린 소녀를 놀래키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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