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4동 마을이야기, “우리 동네, 우리 손으로 꾸미죠!”
월산4동 마을이야기, “우리 동네, 우리 손으로 꾸미죠!”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3.11.28 0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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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자발적 참여로 마을 잡지, 벽화 만들어
'달동네' 조용한 동네에서 활기찬 분위기로 변화해

“오메! 참말로 좋은그. 우리는 언제 해줘? 담벼락 본께 인자 우리 동네가 새 동네 되분 것 같당께!.”

광주 남구 월산4동에는 수박등길이 있다. 이 수박등길은 차도 힘주며 올라가야 할 정도로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곳을 ‘달동네’라고 착각할 정도로 주변 주택단지가 노후한 상태다.

어두운 월산4동 분위기 속 변화의 바람

월산4동에는 상권이 죽어버린 남부시장도 있다. 남부시장은 1984년 준공된 5층의 160세대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건립 당시 건물의 지하와 1층을 남부시장이라 일컬었고, 80~90년대까지만 해도 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문정성시를 이루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 쇼핑몰과 상점으로 급속도로 상권이 위축되면서 남부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는 상인들을 시름만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곳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월산4동 주민들이 “우리 동네는 더 이상 안 될꺼여”라는 예상을 깨부수고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마을의 역사를 찾아내고, 가려진 마을 역사들을 마을벽화로 그려냈다.

▲송병운 주민자치위원(왼쪽), 김종민 주민자치위원장(오른쪽)
김종민 월산4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만나 그 자세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김 주민자치위원장은 “활력 넘치는 마을로 전환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 주민워크숍을 갖고, 우선 마을지도를 만들기 위해 골목으로 나섰지요. 그리고 소문을 듣고 월산4동에 사는 나이가 지긋한 터줏대감어르신부터 예닐곱 아이들까지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되고, 단절됐던 벽을 허물고 주민들은 함께 소통하고 살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물로 지난해 12월 마을이야기를 담은 ‘월산4동에 살다’ 마을잡지를 발행했다. 마을에 살면서도 잘 모르는 마을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동네의 소중함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마을벽화는 동네의 어르신부터 꼬마아이들까지 참여했다. 이렇게 마을역사를 벽화로 그려낸 과정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지난 11월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남구청 1층 로비에서 갖기도 했다.

김종민 위원장은 “마을벽화는 원래 마을잡지 2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특집을 어떻게 채울까 시작하게 된 것인데 수박등길 부근 마을벽화를 완성하고 나니 더 큰 호응이 있었다"면서 "그동안 할머니들은 칙칙하고, 힘들어서 돌아서 가셨던 길을 산책로로 이용하게 되셨고, 마을 만들기 성공담을 듣기 위해 찾는 분들도 많아졌죠~”라고 설명했다.

▲남구청 로비 1층에서 열린 월산4동 마을벽화 전시회
숨겨진 윗마을, 아랫마을 이야기 찾아내

주민들이 알아낸 월산4동의 가려진 보물거리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찮게만 생각하던 마을 유래를 보물로 만들어내고, 보물 속에 또 다른 보물을 찾아냈다.

월산4동은 1970년대 초 구획정리가 된 탓에 윗동네, 아래동네로 불리고 있었다. 현재 대남대로 기준으로 남부시장쪽은 아랫동네, 대남대로 기준 위쪽으로 수박등이 있어 경사가 깊고, 산등선에 위치해 있어 윗동네로 불리고 있다.

마을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남부시장 일대는 70년~80년대 미나리밭, 논에 벼를 심는 질척거리는 곳이라는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도자기와 옹기를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또한 현재 벧엘교회 앞에는 일명 ‘뽕뽕다리’라고 불리는 다리가 있었다. 뽕뽕타리는 공사장에서 임시 계단으로 철판에 둥근 구멍을 숭숭 뚫은 철판을 모아 다리를 놔서 주민들이 많이 이용한 곳이었다.

▲송병운 주민자치위원, 김종민 주민자치위원장
그리고 덕림산 능선을 따라 수박등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이곳은 예부터 마을 주민이 길러먹던 샘으로 식수원이었다. 특히 가뭄 중에도 마르지 않고 배출되고 있어 영험한 샘이라고도 한다. 이 또한 마을의 자랑거리였다.

독특한 명칭을 갖고 있는 수박등은 높은 산턱에 위치했기 때문에 정월대보름이면 아이들의 연날리기 장소로 제격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달도 보고, 무등산을 바라볼 수도 있어 마을주민들 사이에선 속칭 ‘달뫼마을’이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주민들은 동신대한방병원, 다문화가정, 중국영사관, 운진각 사거리 등 동네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찾아내고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담은 벽화작업은 지난 7월부터 시작해 3개월간 300여명의 월산4동 주민들이 ‘의기투합’하고 근대길, 역사 길을 그려나갔다.

주민들 십시일반, 마을벽화 제작 경비 모아

처음에 10곳을 계획했는데 이야기가 이야기의 꼬리를 물면서 어느새 60곳으로 늘어나고 100여점으로 확대됐다. 생각 이상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 이유는 골목과 담에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이야기를 담는 벽화를 그린다는 소식에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쌈지 주머니를 털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먼저 묵은 먼지에 덮여있던 시멘트벽을 시원한 물줄기로 청소를 시작했다. 우레탄 방수사업을 하는 송병운 자치위원과 송 위원의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 딸과 친구들의 재능기부를 받아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밑그림이 완성되고 다음은 하얀 도화지 같은 벽에 본격적인 색을 칠하고 그림을 완성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자치위원, 지역아동센터 아이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나와 팔을 걷어붙였다.

월산4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송병운 위원은 “벽화작업을 하면서 이 동네에 오래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하셨죠. ‘워메~ 이쁜그 우리집 부근도 해줄수 없능가?’라는 말도 하시고, 꼬깃꼬깃한 1만원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제작경비에 보태시겠다고 기부하셨던 어르신들도 있었죠”라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 했다.

그렇게 월산4동 주민들은 2013년의 뜨거운 여름날을 보냈다. 주민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와 벽화그리기에 동참하고, 응원행렬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 놓았다.

송 위원은 “수백 명의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완성하고 나니까 정말 뿌듯했어요. 서로 붓을 잡고 더 예쁜 그림을 그리겠다며 때 아닌 ‘경쟁’이 붙으면서 함께 호흡을 맞춰나갔어요. 그리고 지금은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은 벽화를 보고선 ‘어디 관공서에서 해준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라며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되고 낙후된 동네라고 여기던 월산4동이 그림 옷을 입고 새 단장하고 있다. 여기에 월산4동 주민들은 또 다른 신선한 계획을 하고 있다.

김종민 주민자치위원장은 “지금 마을잡지 2호를 준비 중에 있는데, 앞으로 주민들 힘으로 만드는 마을박물관을 꾸며볼 생각을 갖고 있어요. 주민들이 갖고 있는 옛 마을 사진, 마을에 얽힌 소장품 이야기 등 유물을 발굴해서 마을 자료도 볼 수 있고 책도 볼 수 있는 ‘마을 박물관’ 멋지지 않나요?”라며 구상하며, 월산4동을 생동감 넘치는 마을로 그려나가고 있었다./김다이 기자

▲월산4동 주민들은 지난 7월 말부터 3개월간 마을의 역사를 담은 '마을벽화'을 손수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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