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를 기르는 할머니
양파를 기르는 할머니
  • 문틈/시인
  • 승인 2013.11.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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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한다. 정치를 손가락질하고, 정부, 기업, 교육, 종교, 하여튼 국가의 기본 조직들이나 단체, 개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비판 혹은 비난하는 것이다. 종이신문, 인터넷신문, 방송 할 것 없이 나라 안의 수많은 언론매체들에서, 글을 쓰는 블로거, 트위터, 페이스북, 다음, 칼럼니스트 등으로 온 사람들이 날마다 온 말을 한다.
부정, 부패, 불의를 탓하고, 특정한 사람을 비난하고, 급기야는 나라가 썩었다고도 말한다. 다들 그렇게 말하다보니 온통 나라가 기우뚱하는 듯하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가 그 동안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 기적 같기만 하다. 비난 내용을 들어보면 일리가 있고, 그 내용들에 귀 기울이면 이 나라는 금방 망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남을 탓하는 사람들은 무더기로 있으나 자기를 탓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없다. 그 ‘남’들이란 다 사실상 ‘자기’가 아니던가. 모두들 이 사회가 구렁텅이에 빠져가고 있다며 남들이나 조직, 단체를 욕하는 데 열을 올리는데 그 손가락질 대상들은 어디 하늘에서, 지옥에서 불쑥 나온 것인가 말이다.
난 이제 그런 비난으로 가득 찬 기사나 칼럼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내가 정의감이 부족하거나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이렇게 모두들 돌팔매질을 하다가는 이 나라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또 내 스스로 생각해볼 적에도 그 잘못 중에는 이 땅에서 지금껏 살아온 나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런 비난들은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될 성불러서다.

손가락질하는 것만 봐서는 이 나라가 하나도 잘 된 것이 없어야 맞다. 그런데 그 무수한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세계가 칭송하는 12위권의 경제강국이 되었으며, 대통령을 대놓고 욕해도 누구도 잡혀가지 않는 잘 살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우뚝 섰다. 이 사실을 목도하면서 수십년 동안 귀에 딱지가 않도록 저주와 비난으로 곧 망할 것 같은 나라가 이런 위치에 오르다니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 누가 이 나라를 발전시켜 왔는가. 정부도 아니고, 노동자를 수탈하는 기업도 아니고, 맨날 쌈박질하는 정치인도 아니고, 종교, 언론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발전시켜 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도 잘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나라가 바뀌게 되었는지 그저 수수께끼일 뿐이다.

나는 진정으로 내 자신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싶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하는 데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그저 글 읽고 쓰고 하는 것으로 먹고 살아왔는데, 무안에서 양파농사를 하는 이름 모를 할머니처럼 생산적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하얀 손가락으로 펜대 굴리며 국가와 사회를 욕하며 먹고 살아왔다. 김재규 말대로 ‘버러지 같은’ 존재가 되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만일 손가락질하며 하고 분노해야 한다면 나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이 맞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내 탓인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여러분은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하십시오.”라고 했는데 그 점에서 나는 국가사회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존재였다.
이 나라를 잘 살게 만들어온 사람들은 양파를 키우는 무안의 할머니 같은 말없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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