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책 속에서 바깥 세상으로 나오기
  • 문틈/시인
  • 승인 2013.09.2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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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것이 세상살이를 살아가는 것보다 더 편하다. 책 속의 세상에 있다가 아등바등하는 현실로 나오는 것이 버거울 때가 많다. 아니 현실보다 책을 보며 사는 것이 더 익숙하다.
때로 시내에 나가서 지인들을 만나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피곤을 느끼고는 집에 돌아와 곧 책이라고 하는 가상현실로 들어가 버린다. 마치 게가 갯벌구멍으로 쏘옥 들어 가버리듯이. 읽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이 내게는 없으니 배운 도둑질처럼 나는 날마다 틈만 나면 책 속으로 들어 가버린다. 그것이 요즘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나는 요즈음 자연과학 책 같은 것을 즐겨 읽는데 아내 말대로 그렇게 책에 매달려 있다고 해서 세상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고 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자연과 우주의 신비한 움직임이나 질서를 짐작해보고 감탄하는 일이 내게는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최근엔 양자역학에 관해 쓰인 책을 읽었는데 다는 알 수 없지만 이 우주와 사물이 놀라운 질서로 구성되어 있음에 놀라고 또 놀랐다. 입자 하나가 움직이면 동시에 저 먼 우주의 어느 한 입자도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세상만물은 저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존재케 하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세상 만물은 서로가 얽히고설켜 있다. 그러니까 나라는 존재는 이 얽히고설킴이라고 하는 천지간의 아주 작은 얽힘이다. 만물이 서로 얽혀 있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가를 알기 위해서다. 이 광대한 우주탄생의 최종 목적이 지구상에 쬐그만한 인간 존재를 탄생시키는 데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게는 나라고 하는 인간이 이 우주에 대응한다고 믿는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이 작은 내가 곧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요 며칠 전에 젊은 날 은혜를 입고 살아온 의사 선생님을 오랜만에 찾아가 뵈었는데 연세가 올해 95세. 걷기만 불편할 따름이고 다른 신체적 정신적 활동은 정상이이시다. 마침 방문해온 다른 분이 “인생이 어떠시냐?” 묻자 선생님의 대답이 “재미있다.”였다. 나는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워 그저 책에서 위안을 얻고 현실과 떨어져 살려고 애를 쓰는데 귀도 어둡고 몸도 불편한 선생님은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지금이라도 나도 그 선생님처럼 ‘사는 것이 재미’있게 지낼 방도를 찾아보고 싶다. 참고로 선생님은 일평생 독신으로 의술을 베풀며 살아왔다. 남에게 주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어느 편이냐 하면 나는 그 반대쪽에 가깝게 살아왔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그것을 중심에 두고 살았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주는 삶으로의 일대 전환을 시도해볼 때다. 책 속에 빠져 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보다는 현실에 머무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살려면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주는 삶을 살아야 할 터인데 내게는 그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던가 보다, 나는 구순의 노 선생님으로부터 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책은 그림자고 현실은 빛이다. 그 사이에 내가 있는 듯하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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