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의 한 말씀
탄허 스님의 한 말씀
  • 문틈 시인
  • 승인 2013.08.2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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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시절은 지금 생각하면 보석과도 같은 때였다. 직업상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다 만났고 좋은 이야기들을 실컷 들었으며 그런 일로 월급을 받고 살았으니 그때는 힘들었지만 덕분에 세상 문리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으므로 내 젊은 날에 불만은 없다. 그 시절에 나는 탄허 스님을 만났다. 내 큰 아들 이름도 작명해줄 정도로 큰스님과는 친분이 쌓였지만 스님 앞에서 나는 가랑잎 같은 존재였다.
열반에 든 지 오랜 탄허 스님이 몹시도 그리울 때가 있다. 탄허 스님은 내게는 어린 시절 어둔 길을 밝히며 걷던 초롱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탄허 스님을 뵈러 갔는데 그것은 그 고명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정리해서 잡지에 싣기 위함이었다.
워낙 뜻이 깊은 말씀을 하시므로 나는 정리하느라 무척 고생을 했는데, 다 정리하고 나서 며칠 후 찾아뵙고 정리한 글을 읽어드리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아이구 저런, 머리가 어지간히 됐구만.”하고 타박을 하셨다. 내가 정리한 글이 영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됐다는 말씀은 머리가 아둔하다는 말씀처럼 들렸다.
시봉 스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합격점을 받아 글을 매달 연재하기는 했지만 도저히 탄허 큰스님의 깊은 말씀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마치 항아리물을 작은 컵에 담으려는 것만 같았다. 그랬긴 했지만 나는 탄허 교실에 가는 것을 최고의 보람으로 여겼다. 금싸라기 같은 말씀을 절간에서 나 혼자 듣는 기쁨은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었다. 내게 그보다 더 행복한 날들이 있었던가 싶다.
어느 겨울날 산사로 찾아뵈었더니 스님이 내게 “지금이 겨울이오, 봄이오?” 불쑥 물으셨다. “산길에 눈이 수북이 쌓여서 올라오느라 힘들었는데요. 스님.”하고 대답했더니 “나가서 쌓인 눈을 헤치고 밭의 보리뿌리를 파보시오.”하며 지금이 봄이라는 것이다. 그 보리줄기를 벗겨보면 푸른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며 한 겨울 속에 봄이 있다고 갈파하셨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하지 이후는 땅의 기운이 하늘로 올라가는 겨울이 시작되고, 동지 이후는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는 여름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내공을 쌓은 동양사상의 대학자이시기도 한 큰스님의 그런 말씀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내 영혼은 심히 떨렸다.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못들어본 말씀이었다.
한 번은 내가 하도 큰스님의 말씀이 좋아서 “스님, 말씀들을 제가 책으로 써도 좋겠습니까? 하늘, 땅, 인간, 죽음, 사랑, 인생… 천 권을 쓴다면 원이 없겠습니다.” 했더니 불호령이 내렸다. “내가 이 세상의 책들을 다 불살라버리려고 산문에 들어왔는데 무슨 놈의 책을 쓴단 말인가?”
그리고 나서 여러 달 후 내가 스님의 말씀을 못 따라가는 것이 답답하셨는지 스님은 내게 엄중히 말했다. “이봐, 책을 좀 읽어. 공자, 노자, 맹자, 장자, 퇴계, 율곡...”하고 동양사상가들의 이름을 수도 없이 댔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스님, 이 세상의 책을 다 불살라버리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하고 반격(?)을 했다.
사실은 나도 나름대로는 책을 웬만큼 읽은 책벌레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스님은 화를 내듯 크게 일갈했다. “책들을 많이 읽어봐야 왜 책을 불살라버려야 할지 알거 아닌가?”
스님은 젊은 날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여 공부했다는 금강산 비로봉보다 더 우람하고 높으신 분이었다. 우러러 보였다. 나는 먹고 사느라 그런 스님을 더 오래 못뵙게 된 것이 한이 되었다. 스님은 강원도 월정사 방장 스님으로 계시면서 서울에서 화엄경을 강론하시고, 진잠으로, 고려대 앞 개운사로 거처를 옮기면서 구름처럼 사셨다.
“언제 찾아뵐까요.?”하고 물으면 “내가 약속하기 싫어서 중노릇하는데 날더러 약속하라니 에끼 이 사람!” 대학승 탄허 스님은 푹푹 찌는 지금을 겨울이 시작되는 중이라고 하실텐데 나는 덥기만 하다. 큰스님의 말씀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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