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의 비유
매미 울음소리의 비유
  • 문틈/시인
  • 승인 2013.08.1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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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계절이다. 귀청이 떠나갈 듯 울어대는 매미울음 소리. 어떤 사람들은 너무 시끄럽다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매미가 울지 않는 여름은 너무나 심심할 것만 같다. 매미 울음소리는 여름의 운치라고 해야 옳다.
매미는 다 알다시피 땅 속에서 7년 혹은 17년 동안 있다가 나무 위에 올라와 짧은 며칠 동안 맹렬하게 울음소리를 내어 짝을 불러 알을 낳고는 죽는다. 그것이 매미의 일생이다. 어찌 보면 짝을 만나기 위해서 일생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후손(알)을 낳기 위해서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내가 보기에 참 기이한 일생을 보내는 것이 하루 종일 울어대는 저 매미다. 그저 후손을 낳기 위해서 그토록 오랜 동안 땅 속에서 보내다가 세상에 나와서는 고작 일주일여 동안 울어대다가 간다니.
그런데 매미만 기이한 일생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느 벌레는 태어날 때 아예 항문이 없이 태어난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알을 낳고 죽고, 그 알은 곧 또 벌레가 되어 알을 낳고 죽고, 하루에만 수십대의 후손이 생긴다나.
모든 생명체의 행로는 생각할수록 그저 신비할 따름이다. 그 중에 우리 인간도 포함된다. 만물의 영장이니 하고 우쭐대지만 결국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줄 후손을 낳고 죽는 것이니 달라보았자 매미의 기이한 일생과 비교할 때 열 걸음 안팎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복제의 염원을 갖고 태어난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를 전할 후손을 만드는 책무를 갖고 말이다. 심하게 말하면 모든 생명체는 선조의 유전자를 전해주는 매체에 불과한 셈이다.
성서의 앞 대목을 보면 ‘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버지는 나를 낳고 나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또 자식을 낳고...인 것이다.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처럼 간단해 보여도 그 과정은 인간의 경우 경이와 감동, 좌절과 희망의 드라마로 점철된다.
울어댄다고 해서 매미 모두가 다 짝을 만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극성스럽게 울어대도 짝을 못 만나는 비운의 매미들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짝을 만나지 못한 매미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그들도 일주일여 살다가 짝을 만난 매미나 마찬가지로 결국 죽는다.
나무 밑바닥에는 죽은 매미들의 시체가 수두룩하다. 여름 한때를 울어대던 매미들의 투명한 시체들을 나는 차마 밟지 못하고 걷는다. 누구 말대로 ‘넌 매미처럼 그렇게 뜨겁게 울어 본 일이 있느냐?’고 물을까봐.
매미가 낳은 알은 곧 벌레가 되어 나무 밑으로 기어내려가 땅 속 나무뿌리 근처에서 수액을 빨아먹으며 지낸다. 땅 속에서 아주 오랜 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마치 누구의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나무등걸을 기어 올라와 날개를 단 매미로 변신하여 울어대곤 알을 낳고 죽는 것이다. 그 짓이 해마다 되풀이 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거기에 무슨 의미 같은 것은 없어 보인다. 모를 일이다. 우주적 차원에서 매미의 생명의 연쇄는 꼭 필요한 것인지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그 연쇄의 고리를 계속 이어간다. ‘번성하라’는 것이 생명체의 본질인 것만 같다.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매미는 말매미고, 점잖게 한 멜로디씩 울어대는 것은 참매미, 그리고 털매미도 있고, 아예 울지 않는 매미도 있다고 한다. 여름의 초청손님 매미는 참 생각해볼 바가 많은 화두를 가지고 있다.
매미가 왜 그처럼 기이한 일생을 보내는지 그 답은 모르지만 매미처럼 온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비유는 감명스럽다. 그래서인지 매미는 사실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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