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아름다운 퇴장
인생의 아름다운 퇴장
  • 문틈/시인
  • 승인 2013.06.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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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어르신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를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족 단위에서도 이 문제는 심각한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요양시설에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어르신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도저도 못하는 어르신이 많아서 큰 문제다.
장모님은 여든이 훨씬 넘었다. 어느 날 집에서 목욕 중에 넘어져 발등 뼈가 부러져 입원을 했는데 치매증상까지 생겨나 지금 큰 고통을 겪고 있다. 24시간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석달 가까이 병원신세를 지다가 얼마 전 집으로 되돌아오셨다.
그래도 누군가가 밤낮으로 곁에서 돌보지 않으면 안될 처지라서 간병인을 고용해 낮에는 도움을 받고, 밤에는 집 사람이 친정에 가서 돌보는 중이다. 치매가 어르신은 물론 주위 가족들에게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가는 치매 어르신을 모셔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뭐 그만한 것 가지고 할지도 모르지만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사정이 꼬여 있다. 간병인 고용에 따른 비용은 하루 8시간 기준, 두 끼의 식사 제공, 1주일 하루 휴가비를 포함해 한달에 2백만원 가까이 지출된다.
서민 가계에 엄청난 부담이다. 비용이야 결국 장모님이 살고 계신 작은 아파트를 팔아서 대면 된다고 하지만 매일 밤 집안일을 젖혀놓고 친정 노모의 수발을 해야 하는 집사람의 고된 심신은 딱할 정도다. 그 스트레스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 정도의 경우는 문제라고 하기도 뭣하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늙어간다고 할 수 있는 세대들에게 이러한 경제적 육체적 부담은 그야말로 초인의 의지를 요구한다. 여기에 막연히 효심을 들먹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것 같다. 골절상으로, 치매로, 다른 노환으로 간호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어르신이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집집마다 한 분씩은 있는 듯하다.
이것은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전체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해가 갈수록 형편이 나빠지고 있다. 일평생 그야말로 풍찬노숙을 하며 살아오신 이 땅의 어르신들이 인생의 황혼기에 홀대를 당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안될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병든 어르신을 모셔야 할 것인가. 늙기도 서럽지만 모시기도 힘들다.
지금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 어르신들이 존엄의 자리에서 생애 마지막까지 양질의 삶을 영위하고,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그런 모습을 만들려면 국가가 팔 걷어부치고 나서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했던 김근태 씨는 “노인 문제를 손쓰지 않으면 재앙이 될 것이다.”고 탄식한 일이 있다. 지금 바로 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팔십대 어머니는 지난 달 작고하신 백모님을 부러워하신다.
취침 중에 갑자기 몸이 안좋아 병원으로 옮기자마자 두 시간만에 세상을 뜨신 백모님이 그렇게도 부럽다 하신다. 웰 다잉(well dying).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이라는 것이 부처님 말씀대로 고통의 바다인데 그 험한 바다를 헤엄쳐온 어르신들이 마지막 항해에서 누구의 부축도 받지 못하고 더 큰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는 것은 어르신과 가족 모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데 인생의 아름다운 퇴장을 어르신들에게 안겨드릴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최고의 웰빙이라고 하는 웰 다잉이야말로 어르신들에게 진짜 복지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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