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밀착형 탐사보도의 가능성 모색
지역밀착형 탐사보도의 가능성 모색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3.06.05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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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역언론 현장을 가다(중)
공익 위해 후원자 참여 방안 모색해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관한 ‘지역신문의 디지털 혁신’이라는 디플로마 과정에 참여해 지난 5월12일부터 19일까지 7박8일간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방문, 주요 대학의 저널리즘스쿨과 지역 언론사를 방문해 디지털 혁신사례를 살펴보았다. 혁명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언론시장의 현황과 우리 지역 언론이 나아갈 방향을 3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요즘 한국 언론에서 ‘뜨거운 감자’는 조세피난처 기사이다. 지난 5월 22일 탐사보도 전문매체인 <뉴스타파>가 조세피난처(엄밀히 말하면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parer company)를 만든 국내 재벌 총수 일가의 실명을 공개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1차 결과물로 지난 3일 네 번째 명단을 발표하기까지 세간의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전두환의 장남인 전재국(시공사 대표)까지 발표하는 등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이는 기존의 국내 주류 언론들도 하지 못한 탐사보도를 통해 한국탐사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뉴스타파>보다 더 많은 인력과 자본을 가진 언론들이 하지 못한 과감한 시도는 한국 언론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러한 영향력이 가능해진 것은 디지털 혁신에 의한 인터넷매체가 갖는 특성이다. 또 공공저널리즘이 갖는 새로운 언론의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저널리즘은 사회 환경을 감시하고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기업으로서의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언론유형으로 등장한 공공저널리즘은 상업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공익성을 실현하는 모델이다. 이는 수입에 있어서 광고나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고 기금이나 기부금으로 운영함으로써 언론의 이해관계자인 광고주나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언론 사명에 충실한 경우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에 자리한 ‘프로퍼블리카’(www.propublica.org)와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왓치’(www.californiawatch.org)이다. 이번 미국 연수에서 이 두 곳의 방문은 언론인으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뉴욕 ‘프로퍼블리카’의 성공

<뉴스타파>가 모델로 하는 곳은 뉴욕 맨해튼에 설립된 비영리 탐사전문 온라인 매체인 ‘프로퍼블리카’다. 프로퍼블리카는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언론재벌 머독에게 넘어가자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낸 편집장 폴 스타이거(Paul Steiger)가 후원자 허버트 샌들러(Herbert Sandler)를 만나 창립한 온라인 매체다.
샌들러가 샌들러재단을 통해 1,000만 달러를 기부하며 내세운 유일한 조건은 ‘탐사보도를 잘하는 언론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창립 당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새 매체를 창간한다는 소식에 1천명이 넘는 전현직 기자들이 응모할 정도였다.
프로퍼블리카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10년 4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고립된 병원에서 대피가 불가능한 환자들을 안락사 시켰다”는 사실을 밝혀내 관련 의료진을 2급 살인 혐의로 기소하게 만든 것이었다. 취재기간 2년 6개월, 인터뷰 대상자만 140여명이며 제작비로 20만 달러가 투입됐다. 이 보도로 프로퍼블리카는 온라인 매체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1년에도 미 금융당국의 실상을 파헤친 월 스트리트 머니 머신(The Wall street money machine)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월가 금융회사들이 주택 거품이 꺼질 것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증권을 팔아넘겨 자신들의 보너스를 챙겼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프로퍼블리카는 이러한 불법적 행태를 파헤치기 위해 수천 장의 문서, 금융사들의 증권거래기록들에 접근했다. 접촉한 취재원만 1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제이피 모건 체이스는 미 연방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았다.

후원금으로 언론 운영 모델 찾아

이러한 활약은 프로퍼블리카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공공의 신뢰를 높였다. 주류 언론들 또한 프로퍼블리카의 탐사보도 내용을 인용하고 소개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는 외부의 후원,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하며, 광고나 정부지원금은 받지 않고 있다. 프로퍼블리카의 누리집 첫 화면 상단에는 그들의 모토인 ‘공익 안의 저널리즘(Journalism in pubic interest)’이 실려 있다.
프로퍼블리카가 비교적 단기간에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비영리이다. 마이크 웹(Mike Webb) 부회장은 “초기 100% 허버트 파운데이션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던 구조가 현재는 소액 기부, 유료 광고 등으로 수익을 다변화하고 있다”면서 “보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운영에 도움이 된다면 광고를 싣기도 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뛰어난 인적 구성이다. 탐사보도는 장기간에 걸친 취재와 고도의 집중력, 방대한 데이터 분석 능력 등이 필요하다. 25명으로 창립한 이후 현재 35명이 되기까지 단 한 명도 사직한 기자가 없다. 탐사보도에 대한 기자들의 높은 열망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셋째는 디지털 플랫폼의 적극적 활용이다. 한 편의 탐사보도가 완성되기까지 수집한 자료와 축적된 데이터들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퍼블리카 누리집에는 도구와 데이터(Tool & Data) 꼭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넷째는 뉴스의 공익성을 최고의 목표로 매체 간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대부분 언론사가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지만 프로퍼블리카는 상업용으로만 쓰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더 많은 매체를 통해, 사회적 발언력을 높여나가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왓치’

캘리포니아 왓치는 지난해 특종 보도한 ‘부러진 방패’로 최근 권위있는 탐사보도상을 2개나 수상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부러진 방패’는 캘리포니아 주 경찰이 시설에 수용된 지적장애인의 인권유린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가 하면, 허위로 근무시간을 부풀려 과다한 초과근무수당을 타내 재정을 축낸 사실을 밝혀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5차례에 걸쳐 연재된 이 탐사보도는 돌보미들이 장애인을 성폭행하거나 전자총으로 쏘아 화상을 입히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환자가 의문사한 사건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직무를 태만히 해 ‘방패’로서 임무를 져버린 행위를 파헤친 기사이다.
이 매체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텍스트 기사로만 올린 게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비디오로 독자들에게 선보임으로써 혁신적인 보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왓치는 프로퍼블리카와 같은 탐사전문매체이지만 탄생 배경은 사뭇 다르다. 프로퍼블리카가 비교적 넉넉한 기금을 바탕으로 출범한 매체인 반면 캘리포니아 왓치는 영세한 재정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비즈니스모델’을 선택했다. 좋은 기사로 독자들의 신뢰를 얻어 뜻있는 독지가들로부터 기부금을 끌어 모으는 전략이었다.
여기에는 현재 이 매체의 총책임자인 로버트 J. 로젠탈(Robert J. Rosenthal) 탐사보도센터(Center for Investigative Reporting; CIP) 소장의 아이디어가 모태가 되었다. 로젠탈 소장은 뉴욕타임스에서 사환으로 시작해 40년간 기자로 근무했으며,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편집국장을 역임한 베테랑이다.

감시견 역할 충실한 보도 추구

그는 오랜 언론 경험을 가진 그는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저널리즘과 접목시키느냐 줄곧 고민해왔다. 그가 CIP 소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기자는 고작 7명이었다. 좋은 기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많은 기부금이 몰렸다.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이러한 재정지원에 힘입어 1년 뒤 18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75명의 기자가 활동하고 있다. 연간 예산도 1천100만달러에 달한다.
로젠탈 소장은 “좋은 탐사보도는 시간, 돈, 유능한 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뉴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플랫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가 정보를 통제해서는 안되지만 통제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언론은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수에 방문한 기관들은 그 규모나 성격이 서로 달랐지만 일관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종합 언론의 욕심을 버리고 특화된 전문영역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차별화의 방점은 프로퍼블리카처럼 탐사보도 영역이 될 수도 있고, 팔로 알토 패치 등 철저한 지역화가 답이 될 수도 있다.
혹은 토우 센터에서 출발한 ‘나이지리아 폴리스 왓치’(www.nigeriapolicewatch.com)나 내러티브 등 기존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새로운 틈새영역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 성공했다는 점이다.

기존 언론이 하지 못하는 차별화

종이신문의 위기, 지역경기 침체, 디지털 매체의 도전에 직면한 지역신문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지역밀착형 탐사보도를 통해 다른 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는 고품격의 기사를 단독으로 제공한다면 신문의 가치를 충분히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독자와 광고주만을 생각했지 기부자는 실체적으로 고민해 본적이 없다. 독자와 달리 기부금 후원자의 경우 지역에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이제 언론도 후원자와 함께 만드는 공공저널리즘을 추구할 때다.
<뉴스타파>는 기존 언론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제 분야를 망라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기존 언론들이 하지 못한 탐사보도를 통해 저널리즘 본연의 공익적 가치를 극대화 하면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발적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 풀뿌리 신문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문제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가에 있지, 존재 자체가 고민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 역할의 답은 철저한 지역화와 전문화에 있다. 지역화와 전문화가 만나는 지점은 지역밀착형 탐사보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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