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삼굴의 지혜가 필요하다.
교토삼굴의 지혜가 필요하다.
  •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이사장
  • 승인 2013.01.03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말에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해 두지 않으면, 실패한 뒤 뉘우친다.’ 라는 말이 있다. 이를 안불사난패후회(安不思亂敗後悔)라 했던가. 때문에 매사에 항상 유비무환의 자세로 임하되 오늘에 안일하지 말고 훗날을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닌가.

새해가 문을 열었고 새대통령 취임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생활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서민의 삶은 늘 위험을 대비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고사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고사인데, 바로 ‘영리한 토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숨을만한 굴을 셋이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미리 대책을 세워 놓는 지혜로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재상 맹상군에게는 풍환이란 식객이 있었는데, 풍환은 주인 맹상군으로 부터 그의 영지(領地)인 설(薛)이라는 지방의 차용금을 거두어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풍환은 현지에 가서 그곳 관리들을 시켜 부채가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차용증서를 회수하여 확인한 후 그 증서들을 즉시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설땅의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며 맹상군을 연호했다.

맹상군은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한 후 빈손으로 돌아온 풍환을 꾸짖자 풍환의 대답은 이러했다. “맹상군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너그러운 은의(恩義)입니다. 나는 차용증서를 태워버린 대신 당신을 위해 은의를 사가지고 온 것입니다. ”
그로부터 일년 후 맹상군은 재상에서 파면되어 영지인 설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때 설땅의 백성들은 백리 밖까지 나와서 맹상군을 위로하며 환영했다. 이것이 풍환이 맹상군의 이런 날을 위해 대비한 첫 번째 보신책이였다.

그 후 풍환은 위나라로 가서 혜왕을 만나 맹상군을 추천하며 설득했다. “ 제나라가 맹상군을 파면했습니다. 맹상군을 등용하는 나라는 막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솔깃해진 위왕은 맹상군을 등용키 위해 엄청난 예물을 3차례나 보내 초빙했지만 맹상군은 풍환이 꾀를 일러준 대로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그러자 이런 소문이 제왕에게 들어갔고 이를 두려워한 제나라 민왕은 당장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맹상군을 다시 재상으로 등용했다. 이것은 풍환이 제나라 왕으로 하여금 맹상군을 재등용케 하는 고도의 술책으로 두 번 째 보신책이었다.

세 번째 보신책으로 풍환은 맹상군의 영지인 설땅에 제나라 민왕의 선대왕을 모시는 종묘를 세우도록 건의 했다. 선대왕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민왕으로서도 맹상군에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것이므로 맹상군의 지위는 확고해 질수 있었다.

이렇게 맹상군이 재상에 있는 수십 년 동안 화를 당하지 않고 세도를 누리다가 평화롭게 운명할 수 있었던 것은 풍환이 그의 훗날을 대비해 보신책 세 가지, 곧 숨을 구멍을 미리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혜를 필요로 하는 서민들의 삶은 그래도 하루하루 고달프기만 한 세상이다.

새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려니 하고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인일뿐 권력욕에 노출되어 서민들의 삶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은 요즘 추위만큼이나 날카롭다. 임기내에 중산층 70% 공약을 한 박 당선인의 중산층의 기준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모두에게 교토삼굴의(狡兎三窟)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