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신앙의 뿌리, 화순의 숨겨진 ‘빛’을 찾아
영성신앙의 뿌리, 화순의 숨겨진 ‘빛’을 찾아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2.12.12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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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이세종 선생과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여년이 지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아주 오래전 전남 화순에는 한국 기독교 영성신앙의 뿌리로 추앙받았던 숨겨진 보물이 잠들어 있다. 바로 화순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생활을 했었던 숨은 성자 이세종 선생과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일대기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최근 이세종 선생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이세종 선생과 이현필 선생의 생가를 찾아 탐방하고 대학생 문화재 지킴이 봉사활동, 기도터 방문, 영성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전문가 투어를 하는 등 문화재로 복원하기 위한 노력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세종 선생 연구 학술 토론회 개최

이를 위해 전남문화예술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라남도, 문화재예방관리센터의 후원으로 11일 화순 하니움 문화스포츠센터 세미나실2에서 ‘성자 이세종 선생과 문화 컨텐츠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이세종 선생 기념사업 추진 위원회 김성인 위원장의 사회로 1부 ‘이세종, 이현필 선생과 호남 기독교 역사’, 2부 ‘호남 기독교 문화유산 관광 자원화’를 주제로 발제를 하고 토론회를 이어갔다.

이세종 선생은 1880년 전남 화순군 중촌 등광리에서 출생한 분으로 우연히 얻은 성경을 읽다 ‘생명의 말씀’임을 깨닫고 모든 재산을 털어 가난한 자를 돕고 교회에 헌납, 금욕, 금육, 금식의 절제된 수도생활을 했던 분이다.

그는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잃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야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자린고비 정신으로 돈을 모와 마을에서 부자가 된 그는 우연히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눠주기 시작하면서 재산욕, 명예욕, 식욕, 색욕, 수면욕도 철저히 극복해 초월했다.

철저한 순결과 청빈 등 성자생활

그때부터 아내를 누이 대하듯이 하는 금욕을 선언하고 순결과 청빈을 몸으로 실천한 성자였다. 아내는 두 번이나 새 남편을 찾아 집을 나갔지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내가 다시 돌아오면 받아주기도 했다.

맨발의 성자로 알려진 이현필 선생은 1913년 일제시대 전남 화순군 도암면 권동리에서 둘째 아들로 출생했다. 13세때 기독교를 접하게 되면서 1928년에는 강순명 목사를 통해 도암 이세종 선생을 만나게 됐다.

▲호남신학대학교 하동안 교수
그는 결혼을 했으나 이세종 선생을 따라 부인과 남매지간처럼 지내며 철저한 금욕을 실천하며 순결·청빈·순명을 복음의 삼덕으로 삼고 실천하기 위해 수도하며 일생을 보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다 구도의 길과 구제의 길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드러내는 귀일의 ‘사랑운동’을 제창하고 나서게 된다.

1부 ‘이세종, 이현필 선생으로 시작되는 호남 기독교 역사’를 발제한 호남신학대학교 하동안 교수는 “한국 역사의 위기 속에서 소외받은 이 이 지역에서 위대한 빛이신 이세종 선생과 이현필 선생이 있다”며 “그가 주는 삶을 본받아 우리를 정화하고 문화적 작업이 이루어져서 문학, 음악, 회화, 관광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자 그들의 일대기 재조명해야

발제 후 귀일사상연구소 심중식 소장은 “전남은 일제 강점기 만행이 극대화 되고 권력으로부터 소외와 핍박 속에 민중의 고통과 신음소리가 가장 큰 곳이다”며 “그러한 민중의 아픔에 응답한 성자들이 호남에서 나타나고 어떤 지역보다 깊은 영성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겨레 종교전문 조현 기자
이어 2부에는 ‘호남 기독 문화유산 관광 자원화’를 주제로 조현 한겨레 기자가 발제를 했다. 조 기자는 “왜 이 지역에서 그분들을 재조명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로 인해 기독교가 부흥하기 되었는지 살펴봐야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 근대사에서 이세종 선생은 가장 신비한 인물로 그의 삶은 은막에 가려져 한국 기독교를 비롯한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양극화와 인간성 파괴로 고통 받는 한국사회에 큰 경종을 울리는 인물로 기독교를 넘어서 조명할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 기자는 “21세기 황금만능주의로 심성이 파괴된 한국 사외와 한국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그를 부활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고 강조했다.

2부 발제에 이어 조선대학교 서순복 교수가 토론을 이어갔다. 서 교수는 “한국적 영성의 뿌리를 찾아보면 동광원은 한국 개신교의 뿌리이며 한국 정신사에서 내놓을만할 작품이다”며 “그곳은 가난하게 살고 약자들을 치유하고 순결의 정신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관광문화 콘텐츠 개발을 하여 숨어있는 화순의 ‘빛’을 보여줘야 한다” 의견을 내놓았다.

관광, 문화콘텐츠 개발로 ‘빛’을 찾아

이렇듯 성자 이세종 선생의 큰 영향을 받은 이들은 귀일원, 동광원 설립자인 이현필 선생과 수레기어머니, 광주에서 걸인을 돌보고 YMCA창시자인 최흥종 목사, 약자들을 돌본 강순명목사, 백영흠 목사 등 호남 기독교의 거장급 인물들이 많다.

기독교 영성이 깃든 귀일원은 1949년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고아, 과부, 걸인, 병자들을 받아 돌보기 시작한 곳으로 현재는 남구 봉선동에 위치해 귀일정신요양원, 귀일민들레집, 귀일향기일굼터와 같은 지적장애인 사회복지시설소로 운영되고 있다.

동광원은 이현필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1950년대 광주 무등산에서 고아와 결핵환자 등 700여명을 돌보면서 생긴 수도단체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삶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지난 2004년에는 ‘이현필선생기념관’을 본원 안에 세우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 기독교 영성의 뿌리인 전남 화순의 숨어있는 보물 이세종 선생과 이현필 선생의 일대기를 재조명하여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 관광자원화로 인해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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