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사회주의 (5)
조지 오웰의 사회주의 (5)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2.11.0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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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오웰 연구자인 고세훈 교수는 영국 노동자들의 참담하나 인정 많은 삶을 그린 ‘위건피어로 가는 길’을 낳게 한 잉글랜드 북부의 가난체험이 오웰의 계급적 체험으로 전화되고, 스페인내전은 그를 견고한 사회주의자로 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오웰은 스페인내전 경험 이전까지 통상적인 사회주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실업’ ‘떠돌이의 하루’ ‘런던의 걸인들’등의 글들을 써서 가난에 대한 남다른 체험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절절한 측은지심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 그가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는 개연성을 올곧게 시사하고 있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 이후 노동계급 사회주의자들을 탓하는 정치인 성직자 문인들의 뻔뻔한 설교를 지적하면서 ‘노동계급이 요구하는 것, 그것은 인간들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것으로 배를 채울 것, 실업의 공포로 부터의 자유, 자손들만은 보다 공정한 기회를 갖게 되리라는 바람, 하루 한 번의 목욕, 비가 새지 않는 지붕, 하루 일과가 끝나면 약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시간이 아니었던가’ 하고 절규한 오웰에게 있어서 노동자들의 “물질주의를 비판하며 설교하던 사람 누구도 이런 것들이 없이 생존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었다.

20세기 초의 영국이 아닌 21세기의 한국에 사는 우리들도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행여 그들의 탐욕을 탓하지나 않았는가 돌아 볼 일이다. 아예 저녁이 있는 삶을 포기하고 생명력과 맞바꾸는 초과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총액 월급을 부러움을 넘어서 시샘하지 않았는가도 돌아 볼 일이다. 삶을 향유하는 것은 노동하는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통의식에 젖어있을 수도 있다.

사회주의자가 되기 이전에도 오웰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가난을 들어내서 사람들의 잘못된 상투적 인식을 변화시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였다. 영국이 아닌 동양사회에 있어서도 선비에게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고 염치를 모르는 것이 부끄러움이었다. 오웰을 계급이탈자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오웰은 스스로를 노동계급과 동일시하며 관념으로는 노동계급을 변호하면서도 삶과 행위에서는 노동계급의 일상과 전혀 다른 좌파지식인들에 대한 비판과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오웰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북부의 노동계급의 건강한 가치가 뿌리를 내리고 중산계급이 자신의 이익과 가치를 노동계급에 연대시킬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사회주의 실현의 핵심은 돈보다 가치였고 다른 말로 하면 경제보다 윤리였다. 오웰은 중간계급의 교양을 높게 평가해서 물질주의에 반대하는 가치관을 선양하여 사회를 결코 경제적으로만 파악할 수 없는 인간들의 생존조건으로 인식하였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연대를 제고함으로써 공산주의자들이 역사의 기본 동력으로 밝히는 계급투쟁을 부정하는 셈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시야가 경제적 현실에 갇힌 채 무산계급독재만을 고집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중산계급과의 협력 없이는 무산계급 홀로 전 사회를 지배할 수 없음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그는 변증유물론을 신봉하지 않아 ‘정반합의 저 세 가지 신비한 실체들에 관련된 맑스주의의 철학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단 한사람의 노동자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그의 경험을 술회하고 있었다.

오웰이 택한 민주 사회주의 노선은 민주주의를 신뢰하여 경제결정론을 부당한 역사해석으로 치부하는 입장으로 레닌의 ‘우리의 도덕성은 전적으로 무산계급의 계급투쟁에 종속된다.’는 주장과는 달리 다양한 원천에서 파생된 도덕주의에 깊이 몰입되어 있어 토니가 말하는 ‘부끄러움 없는 윤리적 사회주의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영국 사회주의의 한 가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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