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전자제품에 새생명 '반도상가 맥가이버'
고장난 전자제품에 새생명 '반도상가 맥가이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6.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테잎이 돌아가지 않는 카세트, 뚜껑이 없어 속 부품이 다 드러나 보이는 카세트, 제 기능 못하는 믹서기, 전기밥통 ... 각종 전자제품이 세 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만물상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날마다 새 생명이 탄생하고 있다.

전자제품 전문수리 20년째

광주시 대인동 반도상가 1층에 위치한 '태양전자'(114호). 이곳에 20여년 세월을 부품들과 씨름하며 살아온 이재규(49)씨. 아무리 봐도 못쓸 것 같은 제품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원래 제 모습을 찾는다.
고장난 제품을 고치는 것은 여느 수리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외국 제품들을 전문적으로 수리해 주기 때문이다.

이름없는 외제품도 뚝딱 수리

"사람들이 외국 나갔다 오면서 선물로 사오는 제품들이 고장나면 대부분 부품 구하기 힘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씨는 외제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외제품이라도 그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회사 부품으로도 충분히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형 어깨너머 라디오 분해배워

이씨는 이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 어렸을 적 형인 이재진(54)씨가 라디오 등을 분해하는 것을 좋아해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 어느덧 그의 직업이 되고 말았다. "고물상에서 주워온 라디오, 구형 전축 등을 수도 없이 분해했어요.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 재미가 군대 갔다와서 지금까지 한길을 가게 만든 거죠".
수없이 반복된 경험이 그를 재주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 안에서 '굳이 같은 회사 부품이 아니어도 된다'는 지혜를 찾게 된 셈이다. 만약 그에게 이같은 어린 시절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태양전자'도 없었을 것이다.

자동차나 비행기처럼 너무 커서 세평짜리 공간에 못들어 오는 큰 것들을 제외하고는 뭐든지 척척 고쳐낸다는 이씨. 보통 100볼트짜리 전자제품을 220볼트에 꽂으면 부품들이 타 버려서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버리는 게 보통이지만 사람들은 이것들마저도 이씨에게 가져온다. 그만은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어느새 사람들에게 이씨는 한국 '맥가이버'가 돼버렸다.

새 모델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헌 것 아끼는 단골 많아요

10여년 전만 해도 광주 시내권에 '소리사'가 많았다. 굳이 비싼 돈 주고 대리점에 가지 않더라도 저가에 손색없이 수리를 해주는 '소리사'는 사람들에게 큰 인기였다. 그러나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하루가 멀다하고 신형 제품이 쏟아지면서 미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해 경쟁에서 밀린 '소리사'들은 자연스레 변두리 주변으로 물러나거나 영원히 사라지게 됐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소리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전자'를 찾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 절반 이상이 단골이라고 봐야죠" 굳이 비싸고 똑같은 제품을 쓰지 않아도 이곳에서 이씨의 손을 거치면 또 다시 새 제품이 될 수 있다는 '맛'을 안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갈 수가 없다. 이는 이씨가 앞으로도 태양전자를 지켜나갈 또하나의 '힘'이기도 하다. 전화 (062)226-036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