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생의 광주(3) - 국가 공동체와 국가폭력
한 신학생의 광주(3) - 국가 공동체와 국가폭력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 승인 2012.03.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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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광주 비극의 책임을 지우는 것을 주저하는 신학생은 1980년 5월에 보여진 광기의 실체가 국가폭력이었음을 밝혀낸다.
그것은 국가의 범죄행위로, 당시 신군부는 공식적으로 집권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실상의 국가였다. 국가를 자임한 이 권력집단은 국가보위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동족을 학살한 것이다.

국가주의란 국가의 정당성을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이념인데다 망국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귀숙처였다.
장준하선생이 지적하다시피 한국민들은 ‘외세의 침략에 눌리어 그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려는 암울한 시절’을 총체적으로 경험하여 국가권력에 대한 미신을 갖게 되었다.

또 한국전쟁을 전후한 국가폭력의 무소불위한 횡포까지를 용납하다보니 어느 겨를에 주권의식이 발아할 수 있었겠는가? 미신의 국가권력이 횡포로 단련 된데다 군정으로 그 기량이 세련되다 보니 가히 불가사리 형상이 역력하다.

청출어람으로 군정의 후계를 이은 전두환의 광주 학살은 세계의 양식있는 사람들을 아연케 하였으니, 그 폭력이 가진 절대적 야만성은 독일의 지성들로 하여금 히틀러도 제 동포를 한꺼번에 무자비하게 학살하지는 않았다는 술회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한국 군부의 무자비한 속도의 학살행위와 신속한 사후처리가 능률을 숭상한 국민교육헌장의 정신을 적나라하게 체현한 결과였다면 지하의 유신 원흉을 흡족하게 했을 터. 신학생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든 또 하나는 광주학살 이후의 전두환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지지였다.

한국의 국가권력이 이데올로기적 정당성과 우월성을 독점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유독 광주가 학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명분은 남파간첩의 내란선동, 김대중의 내란음모 등으로 어거지를 써 보아도 충분한 정당화는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외의 다른 지역에 신군부의 어거지가 먹혀들어가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민의 생래적 비겁성이었을까 아니면 호남에 대한 혐오감이 일시에 분출한 것이었을까?

신학생의 판단으로는 결코 그럴 수 없었고 국가주의가 그 열쇠였다. 역사적 경험 속에 우리들은 국민국가에 선험적 정당성을 부여해 왔고 우리의 의식은 권력자와 국가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한데다 지배폭력이 정당화되어 왔던 저간의 현대사.

한반도 남북에서의 반국가 행위는 전 국민적 지지를 구축해 왔다. 그 결과 국가는 반국가적 행위를 한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박탈할 권리를 갖으며 국민은 국가권력에 유린되는 인권을 갈등 없이 도외시할 수 있었다.

병사들의 광주학살에 대한 양심고백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들은 군인들이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그때 그곳으로 간다면 군인인한 명령에 따라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목석같은 항의들만이 있었다. 현실은 인간을 도구화하고 사람들은 이를 수용하거나 양해함으로써 삶의 긴장에서 해방된다.

그 결과 악이 보편화 될 기회를 갖게 되고 국가의 명령이라는 빌미로 악화적 인간들이 횡행하게 된다. 사람의 관절을 뽑고 물 뿌린 몸에 전류를 흘리면서 고문도 예술이라고 회심의 미소를 흩뿌리는 인간이 어디 이 근안 뿐이었을까?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들은 광주학살을 광주만의 문제로 여기거나 도살자가 장악한 국가권력의 의도에 따라 광주를 타자화 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는데, 다행이도 그 잘못이 사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병든 국가주의에 있었다는 것이 신학생의 진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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