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박 통신(8) - 총체적 위기로서 배움터
두레박 통신(8) - 총체적 위기로서 배움터
  • 이무성 온배움터 녹색대학교 총장
  • 승인 2012.01.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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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영재로서 한 공학도가 그 꿈을 접고 치대로 진학을 결정했다는 언론기사 보도를 접하였다. 과학고 출신으로 수학올림피아 등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당초 공학도로서의 희망을 갖고 서울대공학부에 최연소로 합격하였으나 연세대 치대에 등록, 편안한 길을 택하였다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과학영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세류에 편승하여 치의대 등에 몰리는 한 사례로서 흥미로서 기사화한 것이다. 그 배경 등 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정책적인 제안 등은 생략이 된 것이다.

겉으로는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이에 해당되었을 경우 대부분 동일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만큼 현 사회는 실리우선의 현실에 길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은 해방 전후 50년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시엔 대학의 서열화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각 학교마다 학풍이 다르고 내거는 기치들도 달랐다. 입학 희망자들이 자신의 적성에 가장 합당한 학교를 선택이 가능하였다.

특히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은 자신이 수업을 마치기에 편리한 대학에서 수업을 받고 그 대학에서 학위도 수여받을 수 있었다. 속칭 전시대학 졸업장이다.

이후 70, 80년대에도 학교의 서열화는 이전에 비하여 약간 존재는 하였지만 요즘처럼 고착화된 줄 세우기식 현상은 아니었다.

치의대 등에 쏠림 현상은 요즘처럼 극심하지 않았고 오히려 컴퓨터공학과 등 새로운 분야로의 바람직한 쏠림 현상이 있었다. 적성에 맞게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였다.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의 위기와 실종은 이젠 너무 익숙한 상태이다.

천박한 자본주의로서 지나친 상업화는 주변에서 흔히 접하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는 대학에서만은 학문적 성찰이 행해져야 한다. 이를 통하여 배움터로서 대학은 상업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연시되는 상식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건전하지 못한 사회라는 증표이다. 젊은이들이 그 순수한 영혼을 ‘돈’이라는 맘몬사상으로 바뀌어나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한다. 경제대통령이라는 단순한 기대로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결코 구호로서 경제는 사람들이 이상으로 추구하는 가치에 대치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학에서 나서는 순간 젊은이들이 빚쟁이 인생이 된 현 사회에서 청년세대만을 마냥 나무랄 수 없다.

과학자를 양성하고자 과학고를 마친 학생들이 그와는 상반된 길을 가는 것은 분명 사회적 자산의 유실이다. 외국어고에서 학습한 학생들이 자신이 집중하여 학습한 해당 외국어를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고 의치대를 진학하고 있다.

이는 한국교육에서 엄청난 이율배반적인 현상이다. 교육정책의 위기는 현장에서 진단이 되는 것이다. 원칙과 상식이 벗어나게 운영되는 사회체제에서 극단적인 예외현상은 드문 발생이 아닌 일반화로 확산될 수 있을 따름이다.

왕따로 인해 그 꽃 봉우리도 피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학교현장이다. 제2, 제3의 대구 사례들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마지막 보류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음에도 그 혁신으로서 내용 채움은 잰걸음이다.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학교현장에서 쫓겨나면서까지 절박하게 주장하였던 모순된 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선생님들의 외침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교육을 상품이라는 자본의 논리로 인하여 기득층으로서 다수 사학에선 앞서서 후퇴를 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켜야 할 가치로서 후세대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 있는지 의문이 앞선다. 비정상적으로 축재한 자신의 얄팍한 이해를 위하여 보수주의자로 표방하고 나선 자들을 용인하고 있는 현 사회는 상식 밖의 사회이다.

상식이 통하는 한국사회의 복원을 간절히 재차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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