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에 많이 실망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많이 실망했다.
  • 김영주
  • 승인 2011.08.11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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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도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만화영화를 유난히 좋아해서, 극장용 우리 만화영화를 거의 다 보았다. 67년에 [홍길동]이라는 첫 만화영화에 홀딱 반한 뒤로, [손오공] [황금철인] [황금박쥐] [보물섬] [전자인간337] [번개아텀] [로보트 태권브이]를 만났고, 그 뒤를 이어서 추접한 [블루 시걸] 똥폼만 잡았던 [원터플 데이즈] 시궁창에 빠진 [아치와 시팍] 고지식하게 지루한 [오세암]도 있었지만,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 [여우비]와 이번 [소중한 날의 꿈]처럼 서운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림체나 색감도 좋고 이런 저런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품도 있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영화가 놀랍도록 좋아졌는데, 애니메이션은 도통 힘을 쓰지 못한다. 왜 그럴까?

황선미의 동화[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표]가 10여 년 스테디셀러로 100만 부가 팔렸단다. 그 동안 그녀가 겪은 맵고 시린 고생 이야기도 함께 알게 되었다. 그런 고생 끝에 두 작품이 10여 년 스테디셀러로 100만 부나 팔렸다니, 내공 깊은 작가이겠다 싶었다. 마침내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예고편을 보니, 그림체나 색체감이 찌질하고, 캐릭터들의 모습은 유치하기까지 했다.

좋은 원작이 감독을 잘못 만났나? 그런데 신문기사나 평론가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니, 온통 호평 일색이었다. 네티즌들 분위기도 감동으로 가득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스테디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한 탄탄한 이야기 구성이 좋았다.”는 말에, 겉모습은 별로일지라도 스테디셀러 동화를 원본으로 스토리를 잡아서 속내용은 좋은 모양이다며, 참 오랜만에 가족을 모두 동원해서 영화관에 갔다.

온 가족이 입을 모아서 “이게 뭐~야? 완전 초딩이구만~!”, 낭패스러웠다. 예고편에서 보았던 대로 그림체나 색채감이 찌질하고 캐릭터들이 유치할 뿐만 아니라, 스토리라인도 리얼러티가 많이 부족해서 유치하고 어색하며 지루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그 내용이 ‘훈훈한 미담’으로 교훈을 담고 하더라도, 그게 삶의 생생한 리얼러티가 없으면 솜덩어리 씹는 것처럼 그저 ‘고지식하게 뻔한 훈화교육’을 받는 듯하다.

[오세암]이 그랬었다. 어떻게 이토록 찌질한 작품에,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어쩌면 그토록 하나같이 호평만으로 도배할 수 있을까! 그 천연덕스런 입담에, 분노스럽다기보다는 낯이 뜨겁고 닭살소름이 돋아 올랐다. 네티즌들까지도 비판 한 마디 없다는 게 참 이상했다. 혹시 매스컴과 평론가들에게 타락의 손길이 뻗친 걸까? 아니면 10년 간 스테디셀러 100만 부라는 성가를 올린 원작의 유명세에 눌려서, 온통 이런 수렁에 빠진 걸까? 원작이 잔뜩 궁금해졌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조금 재미를 주는 수달과 박쥐의 수다스런 재담은 원작엔 없었다. 원작의 스토리라인 자체에 리얼러티가 이래저래 부족했고 고지식한 교훈을 말하고 있었다. 안델센 동화[미운 오리새끼]에 ‘훈훈한 미담’을 억지스럽게 혹 붙였다는 느낌 말고는 별로 감동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정점을 찍으려는 듯한 ‘족제비에게 자기 몸을 보시하는 모습’도 별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훈훈한 미담’만 그럴 듯하게 갖추면 삶의 리얼러티가 없더라도 감동해야 한다는 ‘허깨비 훈계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망했지만,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이런 정도의 작품이 10여 년 동안 스테디셀러로 100만 부나 팔리는 우리 문화수준이다.

더구나 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별 볼일 없는 만화영화에, 비판 한 마디도 없이 온통 호평만으로 가득 찬 나팔소리에 힘입어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100만 명 관객이 모여들었단다. 부끄러운 일이다.

‘벌거숭이 임금’이라는 우화에선 벌거숭이 임금의 아름다운 옷을 모든 사람들이 찬양하여도 어린이 몇 명만이 “임금님은 벌거숭이!”라며 깔깔거렸다는데, 이 세상은 위선에 찬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까지 “임금님 옷은 아름답다!”고 강요하고 있다. 우습지도 않고 분노스럽지도 않다.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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