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11.03 15:2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0년판 전태일’ 고 서영곤 건설노동자 장례식
임금체불관행 근절·특수고용직 노동자 인정 시급

건설노동자 고 서영곤(48)씨의 장례식이 지난 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첨단대산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현대건설의 상습적인 체불임금에 항의해 분신자살한 지 18일만이다. 시신은 이날 오후 유족들의 오열 속에 북구 효령동 영락공원에 안치됐다.

서씨는 지난달 13일 밀린 임금지급을 요구하며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자살을 시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후인 15일 사망했다. 서씨가 극단적인 선택에 나선 것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해서다.

하청업체인 정주 씨앤디가 속칭 ‘밑돈’을 까면서까지 3개월간 임금지급을 유보했지만 정작 법적 보호를 받을 아무런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입차주라는 특수고용직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서씨는 엄연히 현대건설 하도급업체 레미콘 차량기사로 등록된 ‘노동자’였지만 법적으로는 허울뿐인 ‘사장님’ 대접을 받았다.

▲ 건설노동자 고 서영곤(48)씨의 장례식이 지난 2일 오전 광주 광산구 첨단대산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사진제공=광주전남 추모연대>
우여곡절 끝에 서씨의 장례식이 치러지긴 했지만 한 레미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진실과 의문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서씨 죽음의 배후에 자본과 국가의 음험한 동맹이 도사리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다.

고 서영곤 건설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건설현장의 체불임금 관행’과 ‘정부가 씌운 특수고용노동자 굴레’를 ‘살인범’으로 규정했다. 제2, 제3의 서영곤을 막기 위해 자본과 국가의 사죄와 특단의 조치를 촉구한 것이다.

우선 체불임금과 관련해서는 솔선을 보여야 할 국가·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불공정’ 관행이 더 심각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지난달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레미콘과 덤프 등 건설기계 임대료 체납의 55.4%가 관급공사에서 발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10개월 동안 신고 된 448건 가운데 관급공사가 248건(55.4%)으로 민간공사보다 10.8%나 높게 나타난 것.

이를 기관별로 살펴보면 지방자치단체가 91건(31.7%)으로 가장 많았고 공공기관 87건(35.1%)과 국가기관 46건(18.5%), 기타기관 24건(9.7%) 순이었다.

대책위는 “관급공사에서 임대료 체납율이 높은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권고한 ‘건설기계표준임대차 계약서’ 체결율이 낮은 데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결국 정부가 앞장서 불공정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수자원 공사가 발주한 4대강사업 공사에서 표준임대차계약서 작성비율이 1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현재, 4대강사업의 건설기계 임대차 계약 828건 중 표준임대차계약서 계약은 158건으로 19%에 불과했으며 전체 건설기계 임대차 계약도 1833건 중 494건으로 27%에 머물렀다. 

공정위가 권고한 ‘건설기계임대차 표준계약서’는 건설기계 가동시간 1일 8시간, 임대료 지급시기, 계약해지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공정한 거래와 분재의 소지를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우여곡절 끝에 서씨의 장례식이 치러지긴 했지만 한 레미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진실과 의문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사진제공=광주전남 추모연대>
대책위는 임대료 체불의 또 한 축으로 ‘유보임금’을 들었다. 적게는 10일에서 많게는 60일이 지나야 일당을 지급하는 관행이다.

건설노조가 지난 7월20일부터 최근까지 전국 104개 건설사업장 유보임금실태를 접수받아 분석한 결과 대전·충남 32일, 대구·경북 43일, 부산·울산·경남 33일, 광주·전남 30일, 수도권 30일 등으로 조사됐다.

대책위는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평균 유보기간은 32일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공공·민간공사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 200만 건설노동자들이 모두 유보임금이라는 관행 때문에 임금을 한두 달 이상 밀려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이어 “일단 임금이 유보되면 다음 달도, 그 다음 달도 연쇄적으로 밀리게 된다”며 “발주처→원청→하청으로 연이어지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부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법적으로 ‘사장님’이기 때문에 임금체불과 산업재해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 가운데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직군은 레미콘기사와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4개뿐이다. 그것도 50%를 자부담해야 한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대책위는 “임금이 체불돼도 일하다 다쳐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 없고 하루아침에 잘려도 언제 다시 일할지 알 수 없는 것이 특수고용노동자”라며 “특정한 사람이나 사업체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누구나 노동자로 인정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요구했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는 전국적으로 200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서씨 대책위에는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광주전남진보연대,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광주전남 추모연대 등이 참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토일 2010-11-04 09:15:12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세상!언제나 올까요?노동부는누굴 위한 노동부입니까?
본질에 충실합시다.노동부는 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