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05.26 11: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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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회째 맞는 ‘노대·송화촌 난장’ 살림꾼 민판기씨

정 넘치는 마을 만들고자 지난해부터 매월 공연
주민들이 무대 주인공…건강한 마을공동체 꿈꿔

▲ 초등학생 아이들의 모듬북 공연 장면.
벌써 10회 째다. 지난해 5월부터 한겨울 두 달을 빼곤 매달 도장 찍듯 ‘달려’왔다. 어느 땐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싶다가도 가족과 이웃끼리 달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볼 때면 금세 ‘시작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번진다. ‘노대·송화촌 난장’(이하 노송 난장) 얘기다.

민판기(58)씨는 노송 난장을 뒤에서 묵묵히 꾸려가는 안 살림꾼이다. 노대·송화촌은 광주 남구 노대동과 그 자리에 들어선 송화마을 아파트단지를 합쳐 부르는 말인데 그 이름에는 원주민과 새 주민이 서로 화합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있다.

노송 난장은 2008년 송화마을에 이사 온 민씨가 이웃들과 함께 이곳을 아름답고 정이 넘치는 마을로 만들어 보자는 뜻을 모아 출발했다.

“노송 난장은 거창한 행사가 아닙니다. 주민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고 이웃들과 소통하는 소박한 공간이죠. 엘리베이터에서 이웃과 마주쳐도 모른 척 하기 바쁜 삭막한 세상 아닙니까? 작은 벽부터 허물자는 겁니다. 노송 난장을 굳이 음식에 비유하자면 갖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이라고나 할까요?”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노송 난장을 연다고 하자 몇은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그가 정치를 하려 하거나 잇속을 위해 사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는 편이다.

“무대에서 인사 한 번 시켜달라는 정치 지망생들 요청이 많지만 일절 못 오게 합니다. 그게 도와주는 거라면서요. 상가 쪽도 아예 쳐다보질 않습니다. 지역 안에 있는 학교와 주민 그리고 무료로 출연해주는 연예인들이 꾸미는 순수한 공연입니다.”

그의 진심은 회가 거듭할수록 다양해지는 출연진에서도 알 수 있다. 학교에서 특기적성으로 배운 플루트와 방송댄스를 무대에서 뽐내고 싶어 하는 아이들, 통기타·색소폰 동호회에서 닦은 실력을 선보이려는 동호인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를 노크한다.

▲ 지난달 9회째 공연에는 주민 1천여 명이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관객은 자연히 가족과 이웃들이다. 말 그대로 주인공이 따로 없는 ‘우리들 잔치’다. 처음은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지난달 공연에는 무려 1천여 명의 주민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제 자신이 먼저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유명 연예인이 나오지 않아도 모두가 웃고 즐깁니다. 조금씩 힘을 보태 이만큼 즐거울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요?”

그렇다고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이제 겨우 벽돌 한 장 놓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한다. “지붕을 얹기까지 앞으로 가야할 길이 첩첩”이란다. 더 좋은 공연을 위해 22명의 운영진도 새로 꾸렸다. 재능 있는 출연진 발굴을 위해 노래교실을 열까도 생각중이다.  

동네 공연이라고는 해도 노송 난장은 매회 주제가 있는 품격 높은 공연을 추구한다.
그 동안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담쟁이’ 등의 공연 제목들은 모두 고난과 역경을 만나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중 도 시인의 시에서 따온 ‘담쟁이’는 노송 난장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민판기씨.
23일 저녁 물빛근린공원 수변무대에서 열리는 이번 10회 공연의 제목은 ‘사촌이 배 아플 짓을 말아라’이다. 역시 나보다는 이웃을 생각하고 더불어 살자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번 공연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추모하는 자리로 ‘상록수’ 등 그가 생전에 애창했던 노래들로 레퍼토리를 꾸몄다.

그렇다면 민씨가 노송 난장을 통해 삭막한 아파트 숲속에서 피워 올리고자 하는 꽃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꿈꾼다. 그래서 ‘마을이 곧 대안’이라고 말한다. 법과 제도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이상 내가 사는 마을이라도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가진 것 없이 맨 몸으로 시작했는데 열정을 가지고 하니까 되데요. 광주에 노대·송화촌 같은 곳이 30곳만 더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광주의 표정이 한층 더 밝아지지 않겠습니까? 자기중심적 생활을 넘어서는 건강한 마을공동체,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답이자 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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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 2010-06-24 11:44:59
010-7933-1751

김종관 2010-06-23 20:55:55
노대동(휴먼시아 7단지)에 새로 이사온 사람입니다.
노송난장에 관심있어 담당자(민판기씨) 연락처를 알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