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 힘을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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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영대 기자
  • 승인 2010.05.23 20: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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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 위로와 희망 한국말로 노래
일본 민중가수 하라다·작사자 이시구로 광주방문

누가 보면 금슬(琴瑟) 좋은 부부로 오해할 만도 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사람 좋은 인상까지 똑 닮았다. 게다가 10여년 이상 가수와 작사자로 호흡을 맞춰 왔으니 어디 그게 보통 인연인가. 흡사 백아와 종자기처럼 노래를 위해 하늘이 맺어준 인연임이 틀림없다. 평생의 지음(知音).

하라다 요시오(58)씨와 이시구로 마치코(57·여)씨가 5월 광주를 찾았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를 위한 위로와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다. 하라다씨는 현재 반전평화 노래운동 단체인 ‘우타고에 합창단’의 일원이자 1979년 결성된 소편성 연주그룹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중가수다.

▲ 하라다씨와 이시구로씨는 지난 19일 신광중을 찾아 학생들과 함께 한글로 된 노래를 부르며 그동안의 숙원을 풀었다.
이시구로씨는 나고야 지원회 회원이자 시인이다.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30여 년 동안 시를 쓰고 있으며 그 가운데 100여 편이 노래로 만들어졌다.

그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희망의 보따리에는 ‘자랑을 가슴에’와 ‘플라이 데이 리포트’, ‘화이팅, 힘을 내고’ 등 사회성 짙은 노래들이 담겨 있었다. 모두 이시구로씨가 가사를 쓰고 하라다씨가 곡을 붙여 부른 노래들이다.

특히 ‘화이팅, 힘을 내고’는 지난해 6월 신광중학교 학생들이 ‘나고야 지원회’에 보낸 67편의 편지에 대한 화답의 성격이 강하다. 당시 신광중 학생들은 근로정신대 문제를 주제로 한 계기수업을 마친 뒤 양금덕 피해할머니와 나고야 지원회에 위로와 감사의 편지를 보냈었다.

편지는 일본사회에 감동을 주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고야 지원회가 일본 평화주간인 8월13일부터 16일까지 ‘아이찌 평화를 위한 전쟁전’에서 전시회를 갖는 동안 일본 중·고생들의 답신이 쇄도했다. 

하라다씨와 이시구로씨도 그 때 젊은 세대들의 편지를 보고 새로운 희망을 잉태했다. ‘화이팅, 힘을 내고’는 그들이 산통 끝에 세상에 내놓은 옥동자다.

하라다씨는 “신광중 학생들이 보낸 67통의 편지에 어떻게 보답할까 고민하다 이를 한글노래로 만들자는 구상을 하게 됐다”며 “이시구로씨가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 가사를 쓰고 재일교포 이양수씨에게 한글번역을 맡겼다”고 저간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라다씨와 이시구로씨는 지난 19일 신광중을 찾아 학생들과 함께 한글로 된 노래를 부르며 그동안의 숙원을 풀었다.

이시구로씨는 “노랫말에는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위를 뚫는 것처럼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자는 뜻과 나고야 지원회와 광주시민모임이 미래를 향해 손을 잡고 전진하자는 의미를 담았다”며 “이번을 기점으로 이 노래가 한국어로 많이 보급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전했다. 

하라다 “한국 민중가요 듣는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다”

▲ 하라다
하라다씨는 시력이 점점 약해지는 선천성 시각장애를 앓고 있다. 지금은 모든 사물이 뿌옇게 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그마저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노래에 입문하게 된 것은 16살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신분으로 베트남전쟁 반대집회에 갔다가 우타고에 간사이 합창단에서 나눠준 전단을 받고 호기심으로 가입한 것이 평생의 업이 됐다.

그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9년과 2000년 우타고에 축제에서 한국 민중가수 그룹을 만나면서부터다.

그는 “전두환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한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우타고에 축제에서 한국 민중가요를 들었을 때 한국인과 일본인의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가 알고 있었던 한국음악은 사물이나 북, 판소리 등이 고작이었다.

그는 “비로소 그때 가까운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에 충격을 느끼고 그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며 “한국 민중가수 그룹들과 만나면서 평화의 노래를 고민하고 일본에서 함께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들과 첫 번째 만남은 10여 년 전인 1999년 때의 일이다.

당시 근로정신대 피해원고들이 나고야 재판소에서 첫 재판을 받기 위해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과 행진을 하는데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다는 말에 흔쾌히 나섰다. 그때 이시구로씨와 함께 만든 노래가 ‘자랑을 가슴에’다.

지난해 1월부터는 도쿄 미쯔비시중공업 본사 앞 금요시위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시구로씨의 이야기를 듣고 금요행동을 소개하는 곡을 만들러갔다가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시구로씨가 글을 쓰고 그가 곡을 붙인 ‘플라이 데이 리포트’는 현재 나고야 지원회의 금요시위를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나고야 지원회는 2007년 7월부터 현재까지 횟수로 3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주 금요일 도쿄 원정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이시구로씨는 어려서부터 한국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녀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가 너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정부가 하루빨리 사죄와 반성을 하고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녀는 현재 나고야 지원회 활동을 하면서 시를 쓰고 있다. 시를 쓴지는 횟수로 30년이 넘었지만 아직 아마추어 작가라고 겸손해했다. 작품은 주로 장애인과 일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시구로 “차별과 전쟁으로 지배·피지배국 민중 고통 공유”

▲ 이시구로
이시구로씨가 처음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음악보다 훨씬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원죄 때문에 한반도 문제는 항상 우선순위로 꼽혔다.

그녀가 열여덟 살 때부터 재일동포들과 관계를 맺으며 활동을 했던 것은 일종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연장선상에 근로정신대 피해할머니들이 있다.

그녀는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은 국적과 어떤 삶을 살 것이냐 하는 사회적 선택을 끊임없이 강요당하고 있다”며 “아직도 재일동포를 국외자 취급하는 일본사회에서 이 문제는 살아가는 동안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일본 전쟁세대가 아직도 한국을 지배했다는 뿌리 깊은 차별의식을 갖고 있고 아시아 국가들 역시 낮게 평가하고 있다”며 “하지만 전후세대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 차별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요즘 세대들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차별의식이 거의 없고 문화와 민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자란 세대여서다.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차별과 전쟁은 통치자들이 했던 것이고 그 속에서 지배국가나 피지배국가의 일반대중들은 모두 같은 고통을 공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앞으로도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그 같은 고통을 공유하며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라다씨에게 이번 광주방문은 네 번째다. 한국 민중가수들과 교류를 하면서 한국을 알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유 때문에 한국방문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지 않고는 안 되겠다 싶어 선뜻 용기를 냈다. 일본에서 합동공연을 했던 광주의 지인들이 꼭 한번 와보라고 권유한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렇게 광주와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4년이 됐다.

그는 “4년 전 광주를 찾으면서 한 차례 방문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매년 찾게 됐다”며 “특히 올해에는 5·18 전야제 공연과 미쯔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 1인 시위, 신광중 방문, 무등산 풍경소리 공연 등으로 어느 때보다 뜻 깊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그의 생일은 공교롭게도 5월18일이었다. 그 때문에 5·18 광주에 대한 목마름이 더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 나이가 58살인데 한국나이로는 60살이 돼 갑자기 할아버지 취급을 받았다”며 “광주지인들과 근로정신대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생일잔치를 따로 해줘 두 번이나 축하를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지금까지 ‘귀여운 아이여’, ‘목숨 빛 내’, ‘사랑’, ‘노래를 계속 부른다는 것’ 등의 음반을 냈다.

▲ 하라다씨가 무등산 풍경소리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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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언 2010-05-25 00:41:24
인간의 내면 그 바닥까지 훑어낸 기사. 겉만 아니라 그를 잉태한 내면까지 끌어올린 모처럼 보기 드믄 현장에 시선을 둘때만 펜을 들수 있는 기사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