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자퇴시킨 한 엄마의 변명
대학을 자퇴시킨 한 엄마의 변명
  • 전영원
  • 승인 2010.02.0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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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원(철학 대안학교 ‘지혜학교’ 이사)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아들이 지난 6월에 제대를 했다.

아들은 충청도의 모 대학교 애니메이션 학과에 다닌다. 어릴 때부터 별로 공부에 흥미도 없고, 성적 욕심도 없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무슨 과를 가고 싶은지 희망사항도 없이 공책뿐만 아니라 교과서마저 낙서투성이(자신은 창작 만화라고 우기지만)여서 고심 끝에 그 과를 선택했다.

다른 집 애들보다 유난히 규칙적인 생활을 못 해내고 느려터진 아들은 내 걱정대로 1학년 성적이 엉망이었다. 1, 2학기 거의 모두 F! 외모나 덩치는 그럴 듯하고 붙임성은 또 워낙 좋아서 과대표가 됐다기에 “식물성 카리스마를 보여주삼!” 애교 있는 문자까지 날렸건만….

아마도 학교 수업 자체를 안 들어간 것 같았다. 간혹 학교축제며 체육대회, 수련회 등 행사에 관한 얘기, 멋진 선배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 것을 보면 학교 캠퍼스 안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데….

군 제대하고도 공부에 흥미 없는 아들

추측컨대 처음 부모 곁을 떠나 혼자 하숙하면서 잔소리하고 깨워줄 사람 없으니 당연히 1, 2교시는 빼먹는다.

느릿한 성격대로 어슬렁어슬렁 학교에 도착하다보면 점심시간. 교우들이나 선배들 틈에 끼어서 밥을 챙겨먹는다. 살이 전혀 빠지지 않았던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다 모여서 당구장, 게임방을 순례하고는 또다시 저녁밥 겸해서 술집을 전전한다. 때론 피시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날이 꼴깍 새버린다.

게임 애니메이션이 대세라면서 고 3 때에도 합법적으로 컴퓨터 게임을 즐긴 아들이었다. 피곤하니 더 자야하고 그러다보면 또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으리라!

5.18유공자 자녀여서 조금만 열심히 했으면 학비도 면제인데, 꼬박꼬박 돈 들게 한 아들은, 학사경고를 한 번 더 맞으면 정학 당한다는 걸 그리 심각하게 여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만 되는 군대에서 고문관이 되어 제대로 고생 좀 하길 바랐던 녀석은 얄밉게도 우리 바람과는 완전히 다르게 너무도 잘 버텨내서 즐기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제대를 하고도 녀석은 그저 즐거운 인생이었다. 복학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즐길 궁리뿐.

드디어 나는 결심을 했다.

특별나게 그림을 잘 그리거나 만화에 대한 열정이 보이지도 않은 아들한테 더 이상 그 대학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형식적으로 공부해서 그 과를 나와 봤자 취업이 쉽지도 않을 터, 재주 많고, 열정 넘치고, 헝그리 정신이 투철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

남편과 싸우면서까지 자퇴를 설득했다.

젊어 방황은 보약이라며 자퇴 설득

대학은 가야만 하는 줄 알고 애니 과를 보냈었다. 그런데 네 열정이나 꿈이 느껴지지 않는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말 알지? 미쳐야만 미친다는데 넌 아닌 것 같다.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일거나. 엄마아빠 젊은 날엔 시대를 고민하느라 너무 무거운 청춘을 보냈는데 반대로 넌 너무나 가벼운 청춘 같아서 괴롭다. 차라리 방황이라도 해보면 어떻겠니. 충분히 방황하고 경험한 후에 대학을 정해도 늦진 않을 것 같구나. 인생 길더라. 방황의 이십대를 지나야만 제대로 된 삼십, 사십이 될 것 같다. 대신 용돈은 없다! 보태달라고는 안 할 테니까 네 힘으로 실컷 방황 해 봐! 대학은 정말 필요를 느낄 때에 가라. 안 가면 또 어때?

입시에 실패한 아들 때문에 괴롭다고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그 문제에서 자유다. 아들 자퇴시켰어. 젊은 날 실컷 방황해보라고. 지 성격대로 인생 천천히 가보라고 했다.”

“미쳤냐? 대학 졸업장도 없이 어쩌려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한 번만 더 믿어주고 기회를 줘야지.”

“껍데기 대학 졸업장에 반항하는 거야. 그리고 이거 아니?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더라. 고심 끝에 내린 내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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