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무도의 정신을 잇는 청룡관
옛 무도의 정신을 잇는 청룡관
  • 송혜경 시민기자
  • 승인 2009.10.24 0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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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위대한 유산…태권도 역사의 혼 담겨

광주 동구 서석동과 동명동 사이 조선대 후문 길은 한시도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 반짝거리는 간판으로 여느 대학가에서 볼만한 풍경이다.

차를 피하느라 미처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다녀야하는 현시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항상 걸었던 길이지만 느리게 길을 되돌아 걷다보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도시의 일상이라 할지라도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마을의 문화유산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도내기시장을 돌고 돌아 걷다보니 소방도로개설이라는 작은 메모와 함께 발견한 충효이발소간판 표시는 다른 길과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간판 뒤로 보이는 청룡관. 현판과 등나무는 족히 몇 십 년은 돼 보인다.

 

▲ 청룡관 공개를 조심스러워 했던 김용민(오른쪽) 관장과 이웃 주민들이 청룡관 안집, 청룡관 내부 등을 소개한 후 청룡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태권도의 역사에서 보면 1946년 이후 한국태권도를 대표하는 9대관 중 하나인 청도관의 분관으로 광주 고재천의 청룡관이 설립되었다.

현 김용민 관장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배워왔으며 청룡관을 이어 몇 대에 걸쳐 무도의 맥을 잇고 있다.

 

김 관장은 오래된 사진들을 꺼내 보이며 “예전에는 금남로 5가에도 분관 있었고, 몇 날  몇  일 이곳에서 시험을 봤었어”라며 “몇 십 년 동안 많은 유명인을 배출할 만큼 대단했었지”라고 회고했다.

“예전 같았으면 초단 따는 것도 3년 정도 걸렸어. 예전에는 무도로써 무술과 무예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거의 없어. 스포츠로써 태권도가 일반화 되다 보니 태권도장이 많이 생겨났지”.

거의 운영이 안 되고 현재는 건물주변으로 학생들의 자취방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예전 명성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문화적 가치로서 소중한 청룡관 건물

옛 동명동에 많았던 일본 전통양식의 집들이 사라진 후 몇 남지 않은 것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는 일제의 잔재라기보다는 이런 건물들이 있음으로 후대에 지난 역사를 말할 수 있는 단서이기에 문화적 가치로 충분하다.   

건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과학적인 면을 볼 수 있는데 중간 기둥 없이 양끝의 45도 각도로 기울러진 환기구 통이 지붕을 받쳐준다. 바닥과 천정은 아래위로 공기 통로가 뚫려 있으며 긴 창문 사이로 햇빛이 스며든다.   

오랜 세월 땀과 수련의 흔적. 누렇게 변색된 액자들이 과거에 흥행했던 이곳의 아스라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청룡관과 연결된 안집 또한 볼만하다. 도시 속 에코하우스로 이곳저곳 화분들이 가득했으며

벌써 40~50년을 훌쩍 넘긴 세월만큼이나 집주변의 등나무, 금목서, 은목서가 집을 감싸 안아 아늑함과 향기가 더해준다.

시간이 지나면, 건물 앞에 소방도로가 놓일 예정이란다. 좁은 골목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던 이 길이 소방도로가 생겨서 골목의 정취마저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마을의 자원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하고 소중함을 알리는 기회가 필요 것 같다.

그리고 주민에게도 지켜나가야 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주었을 때만이 일상의 문화유산이 넘쳐나는 문화도시로서 한발 짝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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