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선 수행 길을 묻다
한국불교, 선 수행 길을 묻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9.02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리산서 이판사판 야단법석…정법불교 모색
조계종 수행방식 ‘간화선’두고 비판·옹호 논쟁

한국불교 수행방식을 두고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한바탕 야단법석(惹端法席)을 벌였다.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 작은 학교는 지난달 14일부터 18일까지 ‘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을 진행했다. 이 법회에는 출가 승려와 재가불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한국불교의 수행방식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개진했다.

▲ 지난달 8월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불교의 선수행 방식을 둘러싸고 이판과 사판이 한바탕 야단법석을 벌였다.

이판 쪽에서는 대표적 학승인 무비스님과 전국선원 수좌대표인 혜국스님이, 사판 쪽에서는 익산 사자암 주지 향봉스님과 인드라망 공동체 상임대표인 도법스님이 법문(法問)에 나섰다.

현재 한국불교가 위기라는 진단에 대해서는 이판과 사판을 막론하고 공감했다. 한국불교 수행방식이 선승과 도량의 일상적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의 진단과 해법에 대해서는 사판과 이판이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며 큰 인식차를 드러냈다. 사판측은 조계종의 수행방식인 간화선(看話禪)을 정면에서 조준했다. 반면 이판측은 선방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했다.

혜국스님은 “간화선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지켜온 대단한 자랑거리”라며 “수행의 방법에는 간화선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조계종에서 간화선 이외의 수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계 일각의 깨달음 지상주의로 칼끝을 돌렸다.
혜국스님은 “간화선은 나를 비우고 자비와 공성을 깨닫도록 원력을 심어주는 수행법”이라며 “원력이 모자라도 깨닫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과정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 말길이 끊어진 자리가 바로 교외별전이고 부처”라며 “화두만 남고 내가 사라질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혜국스님은 이어 “선원들이 수행 따로 삶 따로 이중으로 사는 습에 젖어있다”며 “선방과 선지식이 살아날 때 한국불교도 살 수 있다”고 밝혔다.

▲ 도법스님은 "불교는 상식적인 삶이자 당연한 것인데도 머릿속에 가짜부처를 두고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깨달음은 똥'이라고 믿는 도법스님이 해우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법스님은 “간화선으로 깨닫는 것과 다른 수행방식으로 얻은 깨달음이 다를 수 없다”며 “그런데도 간화선 이외의 수행법에 대해 부정하고 배제하고 경시하는 풍토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도법스님은 또 “한국불교의 사상적 토양이 혼탁하고 척박해져 선불교의 꽃이 시들해져 버렸다”며 “불교는 상식적인 삶이자 당연한 것인데도 머릿속에 가짜부처를 두고 수행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조계종의 소이경전에 대해서도 “조계종은 통불교인데 금강경 한권만을 소이경전으로 삼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종단이 안정적 시기에 온 만큼 한국불교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소이경전 문제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향봉스님은 “간화선이 한국불교의 성역이 아니다”며 직설적인 어조로 비판을 이어갔다.
향봉스님은 “지금 100여개의 선방에서 2,500명이 넘는 선원들이 10~20년 동안 간화선 수행을 해도 선지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간화선 수행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혜국스님이 간화선을 30~40년 동안 정진했지만 깨달음이 열리지 않고 있다”며 “사회인도 하나의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데 혜국스님은 간화선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니냐”고 일침을 놨다.
불교계의 현실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혜국스님은 “방장과 조실을 추대할 때 법력보다 선방경력을 앞세워 하사관 계급 올라가는 것처럼 하면 어떻게 선지식이 쌓이냐”며 “실상이 그렇다보니 한 총림의 지도자들이 법어를 쓸 능력이 안 돼 아랫사람이 대필해 주는 지경이 됐다”고 탄식했다.

실상사 주지 재연스님은 “참선은 중요한 수행방법이지만 수행방법 중 하나”라며 “수행은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 모두가 수행할 때 부처님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불교 1,6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지리산 움직이는 선원의 ‘야단법석’이 불교계의 자성과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