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하는 인생이 아름답다”
“역지사지하는 인생이 아름답다”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9.01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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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영원한 지산동 동장 주동연 할아버지

▲지산동 동장 주동연 할아버지.
“당시 지산동은 오지 중의 오지였어. 지천으로 널린 것이 딸기밭이야. 봄철이면 딸기밭에 놀러 온 사람들이 막걸리를 먹고 왁자지껄하게 떠들고는 했지.”

주동연(69)씨가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팔자에도 없는 지산동 동장이 된 이유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이 동네가 까칠하고 좀 드샜지. 이전 동장들이 6개월도 못돼 죄다 그만뒀어. 해병대 중령출신 동장도 1년을 못 채웠으니까.”

어느 날 마을에서 동장을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당시 동장은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별정직  공무원이었다. 게다가 본토박이도 아니고 아버지뻘 되는 분들과 동장을 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젊은 동장이 부임하자 텃새도 심하고 좋은 소리도 안 들렸다.

오기가 생겼다. 깨끗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지인들에게 언제 돈을 벌거냐고 타박도 받았다.

“중학교 때 전라북도 임실에서 형님하고 막내하고 광주로 유학을 왔지.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골수염 수술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중퇴했어. 광주에 내려와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었는데 식물원 주인이 점포의 일부를 내주면서 장사라도 해보라고 하는 거야.”

그때 했던 것이 아이스께끼 장사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0년 동장생활 끝에 지산동이 1, 2동으로 분동되면서 지산 1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5공 때였는데 교황이 광주를 방문한다고 했어. 그때 대금동장으로 옮겨갔는데 매일 새마을 모자를 쓰고 거리청소를 한 기억이 나.

대금동은 지산동에 비해 엄청난 부촌이었다. 그만큼 돈의 유혹도 강했다. 이전 동장은 물론 심부름하던 급사까지 징계를 받았다. 주먹세계와 사창가에 발목을 잡히면 그걸로 끝이었다. 일체 금품을 받지 않고 투명하게 행정을 처리했다. 나름 인정을 받았을까?

2년 후 양동에 있던 새마을 금고에서 대형비리가 터졌다. 그때 전남도에서 문제해결 위한 적임자로 차출됐다. 그 후 새마을 연합회 사무국장으로 광주와 전남을 오가며 16년을 근무했다. 지금 광주상공회의소는 그가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터를 매입해 지은 것이다.

“동장 15년, 사무국장 16년 하고 나니 정년이야. 2000년 정년을 하고 나오는데 수중에 가진 돈이 몇 푼 안 돼는 거야. 담양고서에 들어가 조용히 살려고 땅을 사서 집을 지었지. 그런데 2년이 지난 후 몸이 안 좋아 수술을 받았어. 그때 쓸개를 떼 내 졸지에 쓸개 없는 놈이 돼버렸어.” 

불현듯 이대로 인생을 끝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동장시절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리쌀과 연탄을 배급해주고 취로사업도 시켜줬던 지산동에서 소일거리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민등록도 옮겼다. 그리고 2002년 기초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해 당선됐다.

“상대후보가 민주당 내천을 받은 장로였어. 구민들이 잊지 않고 압도적으로 지지를 해줘 4년 동안 의정생활을 했어. 현직시절 행정과 회계 경험이 큰 도움이 됐지. 의회에 가보니 경륜을 갖춘 전문가가 있어야 행정도 진일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어.”

재선준비를 하던 중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정치의 뜻을 접어야 했다. 지금은 8년째 투병 중인 아내의 병수발을 들면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줄 알아야 해.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쉽게 풀릴 문제도 꼬이고 감정이라도 상하게 되면 훨씬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해.”

그가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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