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더 마인호프]혁명과 테러 사이에서 추락하다.
[바더 마인호프]혁명과 테러 사이에서 추락하다.
  • 김영주
  • 승인 2009.08.28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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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더 마인호프]

▲ 영화 [바더 마인호프] 스틸 컷.

Baader Meinhof? 심상치 않은 포스터로 보건대 맥주집 가게 이름은 아닐 터인데…. 독일 적군파(RAF=Red Army Faction)의 대표멤버 남자 Baader와 여자 Meinhof의 이름을 따서 지은 ‘테러단체 이름’이란다.

적군파? 일본 적군파 · 독일 적군파 · 이탈리아 붉은 여단 · 검은 9월단은 미군기지 폭탄테러 · 비행기 납치와 엔테베 작전 · 뮌헨 올림픽 테러 · 유명인 납치나 암살로 70년대에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놀라게 했다.

그 독일 적군파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실패해 가는지를, 150분 동안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보여준다. 대충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잘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구체적인 모습이 많이 궁금했다. 그래선지 그 150분 동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강퍅한 테러활동으로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 그들의 옥죄이는 도피생활이 팽팽한 긴장을 준다.

자기 작품에 감정적 색깔을, 지워 없애는 것이 자알 담아내는 것보다 오히려 더 어렵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냉혹하도록 여지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큐영화라는 게, 겉으론 마치 그 어떤 호감이나 반감을 떠나서 무미건조하게 Fact만 담아낸 것 같지만, 속으론 자기 색깔을 합리화하려는 의도적인 연출로 고단수의 속셈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치적 선동을 오히려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도록 연출하는 기법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이 독일 적군파에게 그 어떤 의도적인 호감이나 반감을 담지 않으려고 노력한 모습이 가상토록 역력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점이요, 그래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영화인 이유이다.

적군파의 행동을, 앞부분에서는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정의로움으로 그려가지만, 뒷부분에서는 막무가내 독선과 파괴만을 일삼으며 과대망상이나 우울증이라는 정신병적인 자기 수렁에 빠져드는 모습으로 그려간다.

그들은 정의로운 혁명가인가? 아니면 냉혈한 테러리스트인가? 그들을 추적하고 체포하는 경찰총수는 “미치광이들을 끝장내자!”는 부하직원들에게  “젊은 20대 독일인의 25%인 700만 명이 적군파에 공감하고 있다.”며 신중하게 대응하자고 타이르면서, “우리의 무지가 테러리즘을 부추기고 있어.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어. 우리의 임무는 테러리즘과 싸우는 거야. 그러려면 우리는 저들의 동기를 이해해야만 해. 팔레스타인 문제나 미국이 벌인 베트남전과 같은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접근한다. 그 뿌리를 없애지 않는 한, 테러리스트를 제아무리 잡아가두고 죽이더라도, 테러는 시대를 이어서 계속되고 새롭게 변신하여 다시 나타난다.

68혁명을 알기 전에는, 적군파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동네 깡패처럼 막가는 개망나니이거나 바퀴벌레만도 못한 인간말종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68혁명으로 ‘신좌파운동’을 이해하면서, “모든 금지를 금지하라!” 그리고 “사랑과 평화 ` 플라워 무브먼트 ` 상상력”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슨 뜻이며, 왜 그런 구호가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이 베트남 전쟁 ` 무기경쟁 ` 인종차별 ` 성차별 ` 환경파괴를 이슈로 국가와 종교에 기생한 권력과 금력이 저지르는 사회구조적 폭압과 횡포에 저항하는 사회운동과 관계되어 있고, 니체에서 비롯된 실존주의나 푸코 들뢰즈 데리다로 이어지는 현대사상을 터전으로 하며, 피카소 이사도라 덩칸그리고 존 레논의 Imagine을 비롯해서 포크 락 펑크 헤비메탈 그리고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속의 댄서]나 박찬욱의 [올드 보이]에 이르는 현대예술이나 저항적 대중문화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양자역학 복잡성과학 초끈이론 진화생물학 녹색생태학 대체의학 등과 같은 ‘진보적인 자연과학’과도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다. )

이 연결고리들을 꿰고 있어야 이 영화의 첫 들머리에서 누드 바닷가 장면 ` 군사훈련 캠프에서 누드 일광욕 장면 ` 낯선 남자와 함께 같은 욕조에서 노닥거리는 장면 ` 여자 적군파들의 파격적인 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가부장제 성차별에 의한 성적 욕망의 억압을 반항하는 Free-sex운동과 밀접하다는 걸 알게 된다.

▲ 영화 [바더 마인호프] 스틸 컷.

깨진 사기그릇 맞추듯이 흩어진 글이나 책으로 꿰어서 얻은 어설픈 지식은 알고 있었으나, 피와 땀이 흥건한 리얼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잘 알지 못했다. [플래툰]을 비롯한 진보적인 영화에서 그 조각난 편린들을 보았으며, 최근에 [몽상가] [뮌헨] [69년]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 좀 더 구체적인 시대상과 생활상을 만나기는 하였지만, [굿모닝, 나잇]과 [바더 마인호프]에서야 붉은 여단과 적군파 자체를 직접 그려낸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무장 저항운동을 옳게 여기든 그르게 여기든, 그들의 존재가 20세기 냉전체제의 시대상을 읽어내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중재미 D+ ` 영화기술 A+ ` 삶의 숙성 A+. 그래서 일반관객에게 권할만한 영화는 아닐지라도 영화매니아는 보아두어야 할 영화이겠다.

비록 독일의 70시절 이야기이지만, 내가 70시절과 80시절에 만났던 그 사건과 그 사람 그리고 그 글과 그 말들을 오버랩시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만한 사색꺼리로 가득하다. 내가 운동권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애증과 애환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Baader-Meinhof Gang,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조직명칭은 두 지도자 안드레아스 바더(1943~77)와 울리케 마인호프(1934~76)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은행강도와 기타 사업으로 성장했으며 초기부터 서독 내 미군 군사시설물에 대한 폭탄 테러와 방화를 일삼았다. 1970년대 중반 활동영역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확장,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들과 연합했으며 1976년의 프랑스항공사 여객기 공중납치는 이스라엘 특공대의 엔테베 기습작전을 이끌어냈다.

1970년대 초반 바더-마인호프 강은 적어도 22인의 핵심 멤버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 대부분은 1972년 여름까지 거의 모두 검거되었다. 안드레아스 바더는 1970년 탈출에 성공했으나 1976년 다시 체포되었고 울리케 마인호프는 1976년 수감 도중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77년 10월 18일 검거된 동료 테러리스트들을 구해내기 위한 루프트한자 소속 여객기의 공중피납이 독일 특공대의 개입으로 무산된 후 바더를 포함한 3인의 테러리스트가 감옥에서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자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더-마인호프 강은 이후로도 테러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산하에 상당수의 계파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이 영화는 슈테판 아우스트의 [신화의 시간(Der Baader Meinhof Komplex)](이웃 펴냄, 1992.)라는 책을 원본으로 하고 있단다.

베른트 아이힝어가 적군파에 대한 영화 제작을 생각한 것은 1978년부터다. 1970년대 초반, 뮌헨의 필름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던 그는 특히 마인호프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신부터도 적군파의 무자비한 테러 행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프로젝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그의 머릿속에 적군파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신화의 시간>(The Baader Meinhof Complex)을 만났고, 이는 그에게 하늘이 준 기회와 같았다. 슈테판 아우스트가 쓴 <신화의 시간>은 1985년에 독일에서 출간됐다. 서독의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좌파 지식인인 그는 시사 잡지 <슈피겔>의 편집장으로 근무했으며 1966년부터 3년간 좌파 유력지 <콩크레트>에서 일했다. 그 당시 마인호프와 함께 일한 경험이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베른트 아이힝어는 “<신화의 시간>이야말로 1967년부터 1977년까지의 시대상과 적군파의 활동을 가장 완벽하고 상세하게 요약한 책”이라며 이것을 영화화하기로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슈테판 아우스트는 “이제 드디어 때가 됐다”며 “베른트 아이힝어가 내게 영화화 제의를 해오길 20년간 기다렸다”고 반가워했다.

베른트 아이힝어는 이 영화는 무조건 독일 감독이 연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뮌헨의 필름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하고 이미 두 작품을 같이 한 울리 에델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다. 울리 에델의 대답은 “다른 사람 누가 하겠어?”였다.

적군파의 초기 혁명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지난 기억을 끄집어내고 관련 자료를 샅샅이 조사하는 것은 물론 전직 테러리스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격동의 10년을 150분에 효과적으로 담기 위해 울리 에델은 이 같은 철저한 자료 조사 외에 장르 영화를 탈피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48777&videoId=24850

작가 주. 김대중님의 서거를 깊이 애도합니다. 님께 이런저런 불만이 없지 않아서 한 시절 제법 투덜거렸던 적도 있었습니다마는, 그래도 이 꾸질꾸질한 현실 세상에서 님만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 아는지라 존경하고 흠모하는 맘을 돌이켜 잡았습니다. 더구나 이 세상이 다시 어둠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매, 그나마 ‘길잡이 별’이 되어주신 님마저 돌아가시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못된 권력의 몽둥이질과 경상도 집단이기주의의 악다구니에 무던히도 시달리던 ‘이승의 가시밭길’을 벗어나셔서, 맑은 시냇물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 위에 꽃향기 넘치는 ‘저승의 비단길’로 고이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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