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 임은주시민기자
  • 승인 2009.08.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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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덕, 이기오 부부의 따뜻한 순애보

▲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 순덕씨와 기오씨는 하늘이 맺어준 베필처럼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세 살배기 아들 승민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부.

 ‘천상이 내린 하모니’라 불리던 사이먼과 가펑클은 ‘Bridge over troubled water’라는 곡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그대가 지치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그대 눈에 눈물이 가득 찰 때 내가 그것을 말려 드리겠습니다. 난 그대편이 될 것입니다. 어둠이 오고 고통이 주위에 가득할 때도….”

세상에서 오로지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감으로 몸부림칠 때 당신 편이 돼 주겠다며 맞잡아 오는 손은 얼마나 따뜻한가.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수줍은 듯 웃음 짓는 한 부부가 있다.

바로 류순덕(30, 지적장애 3급) 이기오(36, 지체장애 3급)씨 부부.

2007년 1월 22일 계림동성당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어느새 3살짜리 재롱둥이 아들을 두고 있었다. 

순덕씨와 기오씨가 부부가 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유는 부부가 가지고 있는 장애 때문이었다. 순덕씨는 지적장애가 있으며 기오씨는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 가운데 글자 하나만 다를 뿐 둘은 장애3급의 중증 장애인이다.

하지만 이들이 사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벙그는 부럽고 예쁜 모습이다.

서로의 상처 보듬고 행복한 가정 일궈

둘의 인연은 2005년 12월로 거슬러 간다. 그때 순덕씨는 하남공단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순덕씨의 순진함과 착함, 성실함이 맘에 들었던 같은 회사의 언니가 순덕씨와 기오씨 사이에서 다리를 놓았다. 

소개팅 자리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 둘은 첫눈에 서로를 맘에 들어 했다. 순덕씨에게 기오씨의 어디가 좋았느냐고 묻자 수줍게 웃으며 “그냥 다 좋았어요”라고 말한다. 같은 질문을 기오씨에게 던지자 기오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글쎄요” 하더니 “착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요즘 아가씨들은 자기 잘난 줄 만 알고 사는데 순덕씨는 그런 사람들과 달랐어요”라고 기오씨는 덧붙였다.

그렇게 시작된 둘만의 데이트는 1년 동안 계속됐고 부부의 연을 약속했다. 하지만 결혼이란게 그렇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난관은 장인어른이었다. 시골어른의 고루함을 그대로 갖고 있던 순덕씨 아버지는 기오씨의 눈에 보이는 장애가 창피하다며 결혼을 끝끝내 반대했다. 신부 측 반대가 너무 심하자 신랑 측도 자존심이 상했다. 신랑 측 부모님도 순덕씨가 탐탁지 않다며 퇴짜를 놓았다. 순덕씨 장애는 못보고 기오씨 장애만 본다는 이유였다.

거센 반대 때문에 둘의 결혼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난관에 처했다. 이때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던 이는 바로 손위의 처형. 처형은 둘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힘이 되어 주었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그래도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자 둘은 처형의 지지를 등에 업고 모종의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가다가는 끝까지 결혼하기 힘들 것 같으니 먼저 아이를 갖고 양가 어른들을 설득하자는 ‘승부수’를 띄웠다. 둘은 다행히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을 안고 결혼식을 치룰 수 있었다.

극심한 반대로 나름대로 자존심도 상했고 편견을 가질 법도 한데 기오씨는 그런 생각 없이 순덕씨나 처가에 듬직한 남편, 건실한 사위로 제 몫을 해냈다. 

하지만 둘의 결혼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결혼 후 시어머니와 같이 거주하게 된 순덕씨는 시어머니와 잦은 마찰로 많이 힘들어 했다. 순덕씨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라 시어머니가 묻는 말 외에는 절대 먼저 말하는 법이 없단다. 시어머니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아직도 이것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이때마다 중간에서 절충의 역할을 해줬던 기오씨다.

“말을 안하는 게 아니라 말이 안 나오는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하면 되지.”라며 기오씨는 속 넓은 소리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기오씨의 마음은 하해와도 같아 보인다.

결혼해서 아들 승민이를 낳고 돌이 될 때까지 순덕씨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맡아했다. 순덕씨는 청소와 정리, 설거지, 요리 등 주부로서의 역할을 말없이 야무지게 잘한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 대신 친정 살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살림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시어머니와 자꾸 부딪치다 보니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순덕씨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와의 소원한 관계도 자연스레 풀렸다. 

착한 아내, 건실한 남편 “바랄게 없어”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묻자 기오씨는 나이가 좀 더 들면 시골에 가서 간단한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단다. 기오씨는 식구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농사만 짓고 나머지는 여행하며 살고 싶단다. 어렸을 적 걸린 소아마비로 맘껏 돌아다니지 못한 탓이다. 순덕씨는 웃음으로 그 말에 동의한다.

혹시 서로에게 바라는 점은 없느냐고 묻자 “특별히 바라는 것 없어요.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한다. 순덕씨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예”하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불편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불평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사랑가득한 부부의 ‘해피 바이러스’가 바람을 타고 온 세상 끝까지 멀리멀리 퍼져 나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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