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먹고 살게 숨통 좀 틔워주쇼”
“우리도 먹고 살게 숨통 좀 틔워주쇼”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9.07.14 1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룡슈퍼에 잠식당한 골목 슈퍼마켓
골목 상권까지 침투·문 닫는 골목슈퍼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등장으로 동네 슈퍼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등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SSM들이 막대한 자본력과 대규모 인프라를 바탕으로 동네 슈퍼까지 넘보고 있지만 정부는 죽자 살자 그런 기업들의 뒷바라지에 열을 올릴 뿐 ‘살려 달라’는 소상공인들의 아우성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더욱이 SSM을 규제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들의 SSM 진출이 더욱 늘어날 거란 우려가 팽배하다.

▲ SSM은 막대한 자본력과 대규모 인프라를 바탕으로 골목 상권 장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는 SSM을 규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

SSM으로 직격탄을 맞은 동네슈퍼들은 대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속수무책 당할 뿐이다.

동네 슈퍼들은 “기업이 뭐가 아쉬워서 이제 골목 상권까지 넘보는지 모르겠다”며 “아무리 그래도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사는 동네슈퍼를 상대로 잇속을 챙기려 하다니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롯데는 광주·전남 14개 빅마트를 인수해 2007년부터 롯데슈퍼를 개점해오고 있다.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한 롯데슈퍼는 개점 2년 만에 해당 자치구 거점 역할을 하며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롯데슈퍼에 죽어나는 건 동네 슈퍼다. 롯데슈퍼 인근엔 아예 슈퍼를 찾아보기 힘들거나 있어야 한두 개가 전부다. 최근 몇 년 새 문 닫은 동네 슈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가장 먼저 롯데슈퍼가 입점한 북구 문흥동의 경우 그 사이 인근 동네슈퍼 두 군데가 문을 닫았다. 인근 주민 차소진(26)씨는 “아파트 밀집 지역이지만 편의점을 제외하곤 슈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며 “음료수 하나를 사먹으려 해도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등 이래저래 불편함이 많다”고 지적했다.

황금상권이라 불리던 아파트 상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근 아파트 단지 앞에 위치한 ㅎ마트 김성봉(46)씨는 “일단 가격 경쟁에서 뒤지니까 싸워볼 엄두도 못 내고 문을 닫는 구멍가게들이 늘고 있다”며 “고객 유치를 위해 제 살 깎아 먹는 심정으로 단가를 낮추다 보니 마진은커녕 공치는 날이 더 많다”고 한탄했다.

김 씨는 “우리 같은 동네슈퍼들이 한순간에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서서히 매출이 감소하며 도미노 식으로 넘어지는 게 더 큰 문제다”며 “공룡슈퍼들의 대규모 물량 공세에 맞서 고객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구매상품 무료 배달, 전화·인터넷 주문 배달 등 소비자를 현혹하는 갖가지 판촉행사를 펼치는 SSM에 맞설 여력이 없다는 것.

일명 구멍가게로 불리는 소형 슈퍼마켓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봉선동 ㅁ슈퍼 이영승(46)씨는 “애들 코 묻은 돈을 상대로 장사한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는 “화장지나 샴푸 세트 등은 구색 맞추려고 갖다 놨을 뿐 실제 판매되는 것은 초콜릿이나 껌 등 아이들 군것질거리가 전부다”며 “우유나 담배, 과자 등은 공산품인지라 싸게 팔수도 없고, 제 값 주고 물건 떼 와서 마진없이 넘기는 속사정을 소비자들이 어떻게 알겠냐”고 속내를 털어놨다.

봉선동 ㅅ슈퍼 정경희(30)씨는 SSM의 얄팍한 상술을 꼬집었다. 정 씨는 “g당 가격을 따져보면 많게는 2배 이상 우리가 가격이 싼 제품이 많다”며 “용량에 상관없이 가격이 싸면 물건 값이 저렴하다고 생각하는 소비자 심리를 악용해 마치 물건이 제일 싼 것처럼 과대 홍보한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살 길이 막막해진 동네 슈퍼들은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운암동 롯데슈퍼 맞은편에 위치한 ㅊ마트는 과일과 축산, 슈퍼를 한데 합쳐 운영하고 있다. ㅊ마트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김정희(40)씨는 “사는 게 힘드니 이렇게 해서라도 먹고 살 궁리를 해야지 어쩌겠냐”며 “공동 운영하다 보니 자릿세 부담이 반으로 줄어들어 그나마 손해 보는 장사는 줄였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