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금남로에서
또 다시 금남로에서
  • 리명한
  • 승인 2009.06.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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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한 소설가

금남로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거리이다. 그곳에 나가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미친 사람이 되어 하늘을 우러르고 껄껄거리기도 했다.

어느 날은 태풍이 불어올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혀 낙엽으로 변하여 달리는 차에 뛰어들거나 스스로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속의 주인공이 되어 총을 메고 산모퉁이를 도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금남로에는 체게바라처럼 나 홀로가 아닌 다수의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자들의 영혼이 떠돌고 있다. 만나면 가슴이 환해지면서 껴안고 싶어지는 친구, 손을 잡으면 전류처럼 뜨거운 동지애를 전해오는 사람을 찾으려면 우선 그곳에 나가볼 일이다. 금남로는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순결한 영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산자와 죽은 자가 공생하는 광장
 
그렇다고 금남로가 마냥 그렇게 피를 뿌리거나 목숨을 던지고 싶은 사람들만의 거리인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떤 날 분노와 슬픔의 고비를 넘어 감미로운 청춘의 정감을 되찾아 지난 날 가슴 아프게 사모하다가 짝사랑으로 끝난 그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에 신호를 무시하고 큰길을 횡행하다가 위기를 넘기기도 했고 골목의 벽에 사랑의 연가를 써가다가 막다른 골목의 벽에 부딪혀 되돌아서기도 했었다.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만나지고 오랜만에 만난 다정한 친구 때문에 동행한 친구를 놓쳐버리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버렸다가도 찾고 찾았다가도 버리는 인간들의 일상사를 바라보면서 금남남로는 우리에게 날마다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항쟁의 거리, 낭만의 거리
 
1987년 6월, 금남로에는 매일처럼 수천수만의 군중들이 유월의 뙤약볕 아래 모여들었었다. 지독스런 최루가스를 마시고 기절한 사람도 있었고 직격탄에 옷이 뚫려 허벅지에 접시만한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이한열을 살려내라. 군부독재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 목마른 민중의 마음은 너 나 없이 하나가 되어 가슴은 용광로요 정신은 불꽃이었다. 사랑과 명예와 죽음을 초월한 싸움 끝에 쟁취한 6.29의 항복선언은 감격과 환희 속에 피어난 인간승리의 찬란한 꽃이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지금 어처구니없게도 핸들을 과거로 틀고 있는 운전수가 모는 차에 몸을 맡기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발버둥치고 있다. 파렴치한 과거 세력들은 썩은 고기 한 점으로 국민들을 속여 권력을 장악한 다음 수십 년 동안 이루어 놓은 민주적 성과들을 깡그리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명한 국민들이 언제까지고 속고만 있을 리는 없다. 어둠을 밝힐 촛불은 광장을 밝히고 거리를 매운 분노의 함성은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지고 있지 않은가.

하루 속히 세상이 발라져 또 다시 낭만의 거리로 나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그림자를 찾아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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