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오늘처럼…
22년 전 오늘처럼…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6.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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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퇴진·민주주의 사수” 금남로 함성
시민 3,000여명 운집…범국민대회 열려

‘독재타도’와 ‘민주쟁취’의 함성이 다시 광장을 뒤흔들었다. 22년 전으로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냥 박수치고 웃을 수만은 없었다.

광장의 주인들은 참담하게 고개부터 숙였다. 부끄러운 주권자들은 자성의 염(念)을 토해내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칼끝은 ‘이명박 퇴진’과 ‘민주주의 사수’로 모아졌다. 마치 22년 전 오늘처럼. 

▲ 1987년 6월이 그랬던 것 처럼 2009년 6월에도 어떤 죽음들이 있었다. 이 죽음을 애도하는 영상을 보며 시민들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10일 저녁 7시 동구 금남로 거리.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노동, 농민, 여성, 종교, 교육, 청년·학생 등 각계 시민 3,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6월항쟁 정신계승·민주회복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역주행과 민생·인권 압살, MB악법·대운하 일방강행, 남북관계 파탄 등에 대해 급제동을 걸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국정쇄신 등을 요구했다.

이명한 범국민대회 준비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 자리를 달구는 용광로의 쇳덩이 같은 불길이 꺼지지 않는 한 어떤 악당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말살시키지 못할 것”이라며 “22주년 6·10항쟁 기념일을 기점으로 민족사의 등불을 밝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고 호소했다.

선덕사 행법스님은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시대착오적인 강압통치를 하고 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행렬은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후퇴시키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꾸중”이라고 주장했다.

행법스님은 또 “이명박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민생·미디어·비정규직 악법 철회와 대운하 5대강 정비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정을 계속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정교회 장헌권 목사는 “한국교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것을 반성하고 참회 한다”고 운을 뗀 후 “민주주의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이명박 정권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장 목사는 이어 “6·10항쟁은 독재를 향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중의 함성이었다”며 “미친 운전수에게 더 이상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반민주, 반민중적인 이명박 정권을 끝장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 10일 저녁 7시 동구 금남로에 모인 3,000여명의 시민들이 시민 1인 발언을 들으며 촛불을 들어 함성으로 함께 하고 있다.

청소년들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의식이 깨어있는 청소년 연합’ 등 광주지역 13개 청소년 단체 회원들은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숭고함을 배웠는데 지금은 청소년이 배우고 바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다”며 “위협받고 있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10일 오후 2시 현재 전국적으로 3,083명의 청소년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있다.

강기수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이명박 퇴진운동’을 제안했다.
강 위원장은 “용산에서 철거민이 죽고 박종태 열사와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이명박 살인정권의 퇴진운동을 추진하자고 제안 한다”고 밝혔다.

윤난실 진보신당 광주시당 대표는 “독재정권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기백으로, 주권자의 이름으로 명령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남북관계 파탄 그만두라, 후퇴하는 민주주의 멈춰라, 잘못된 경제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윤 대표는 또 “이명박 정부가 집회시위 참가자를 범죄자 취급하고 언론과 사법부를 권력의 앞잡이로 만들려하고 있으며 최저임금 삭감과 비정규직 악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며 “민주주의 확장과 양극화 해소,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연대하고 투쟁해서 승리하자”고 호소했다.

화물노동자라고 신분을 밝힌 이는 “박종태 열사의 염원은 해고노동자의 직장복귀와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며 “박종태 열사를 죽인 더러운 정권과 추잡한 자본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결의를 다졌다.

▲ 경찰이 금남로 5차선을 집회장소로 다 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찰과 준비위 사이에 집회장소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대학 풍물패들이 그 길을 힘차게 달리고 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도 무대에 올랐다.
나간채 전남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동안 철거민과 노동자가 죽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결했다”며 “이명박을 몰아내자, 한나라당을 심판하자, 조·중·동을 물리치자”고 주장했다.

나희덕 조선대 교수도 “청소년들의 시국성명을 듣고 많이 부끄러웠다”며 “우리세대가 22년 전 느꼈던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을 반성하고 뉘우쳤다”고 말했다.

정광훈 한국진보연대 고문은 “이명박 대통령을 모래업자, 자갈업자, 포클레인 업자”라고 규정한 뒤 “농민과 노동자를 죽이는 정권은 더 이상 우리의 정부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범국민 대회 참가자 일동은 대회 말미 결의문을 통해 “우리는 오늘 ‘국민을 이기는 권력자는 없다! 국민이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서민들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라는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진실이 고사되어가는 것을 6월 항쟁의 정신으로 연대하고 행동해서 반드시 되찾을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결의문은 또 “오늘을 계기로 민주, 진보, 개혁을 바라는 범 세력들이 다 같이 힘을 합쳐 민주주의와 인권회복, 남북관계의 평화적 회복, 서민 살리기에 차이를 넘어 단결된 힘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날 대회는 밤 9시40분께 마무리됐다. 한때 경찰과 준비위 사이에 집회장소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조성됐지만 대회 직후 5개 차선 모두를 집회장소로 허용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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