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실만은 말해 주오”
“이제 진실만은 말해 주오”
  • 강성관 기자
  • 승인 2009.04.29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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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 이철규씨 어머니 황정자 여사

“이렇게 20년이 흘러버릴 줄 어떻게 알았것소. 남들은 이제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어디 아파서 죽어도 가슴이 매어지는데 고문당해서 죽었는데, 얼마나 짠하요, 그것이 제일 짠하요”.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한 아파트에서 만난 어머니는 기자를 눈물로 맞았다. 고 이철규의 어머니 황정자(75)씨. 자식의 죽음이 ‘의문’으로 남겨진 2009년. 황씨는 기자가 미처 질문을 하기도 전에 ‘아들 이철규’를 추억하며 “허망한 세월”을 탓했다.

▲ 고 이철규씨 어머니 황정자씨.

황씨는 “올해는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제사를 지내고 싶었는데…”라며 늘 속이 타들어 갔던 아버지 이정진씨를 언급하며 “철규 아버지가 ‘내가 80년 살면 다 알게 되겠지’하고 말했는데 결국엔 어떤 사람이 우리 아들을 죽였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고 돌아가셨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정진씨는 몇 해 전 지병으로 사망했다. 정부가 진상조사를 벌여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주길 바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들 곁으로 가야했다.

“그래도 좋은 세상 와서 아들이 민주화 운동한 사람으로 명예회복도 됐고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다고들 말하더라.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밝혀지고, 그 사람이 철규 묘 앞에 무릎 꿇고 ‘내가 자네를 죽였네, 미안하네’하고 사과를 해야 그것이 명예회복이제…”.

의문이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바에야 민주화운동 보상 대상자로 결정된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황씨는 89년 당시 자식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행방이 묘연했던 89년 5월 3일과 10일 사이 아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담담하게, 가슴 아프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아들을 검문했던 경찰, 제4수원지 관리인 등의 실명과 의문점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철규가 맞은 흔적들이 많았는데 검찰은 익사라고만 했다”며 “당시에도 경찰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의문사규명위에 89년 당시 부검자료를 검토한 일본의 법의학자 가미야마씨가 ‘실족 익사’라는 검찰의 발표와는 정반대의 소견서를 보낸 바 있다.

익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물에 빠뜨려졌다는 내용이었다. 복부 등에 구타당한 흔적이 발견돼 전체적으로 타살 의혹이 짙다는 소견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조사를 마친 의문사규명위는 ‘조사 불능’으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나라가 무섭게 하고 말을 못하게 막았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했으니까 우리 아들이 뭔 일로 죽게 됐는지 말을 해 주면 좋겠는데…. 아들에게 못쓸 짓을 한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진상을 밝힐 수가 없잖소”.

당시 사건 당사자들의 양심 고백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과거 의문사를 해결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이다. 황씨가 “이제는 말 좀 해줬으면 지금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황씨의 간절한 호소가 그들의 입을 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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