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품과 신뢰만이 재래시장 살 길
좋은 제품과 신뢰만이 재래시장 살 길
  • 정영대 ·김영대 기자
  • 승인 2009.01.22 21: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 양동시장 탐방]상인들 시장 살리기 안간힘…행정기관과 시민 힘 보태야

지난 19일 오후 광주 양동시장. 아직 본격 대목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설 명절선물과 제수용품을 마련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 경기가 절반가량 줄었다는 상인연합회 관계자의 하소연이 괜한 엄살로만 느껴졌다.
  
“재래시장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명색이 설 대목인데 어째 반짝 특수가 없을랍디여. 어차피 설은 쇠야 할 것인디.” 국밥집 아줌마의 말이다.

시장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수산물을 판매하는 지현이네 집 앞에서 가격흥정을 둘러싸고 실랑이가 한창이다.
  
“할머니 5천원은 더 주셔야 하는데요.”
“아따 많이도 샀는디 쪼금만 더 깎아줘.”  
  
한영희(78·남구서동) 할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여동생과 딸을 데리고 양동시장을 찾았다. 이맘때쯤 제사가 있어 매년 시장을 찾는데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자식에게 보낼 설 선물까지 마련했다. 고막 2만원, 낙지 5만원, 굴 7만원, 홍어 16만원 등 총 3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 양동시장 어물가게는 설 대목이라 평소보다 매출이 올랐다. 명절 땐 대형할인마트보다 재래시장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2~3년의 장사 경력이 50여년 재래시장에서 흥정을 해온 할머니의 노련함을 따라오지 못한다. 경기는 어렵지만, 흥정하면서 정을 나눈다.
  
“시장이 크고 가격도 싸서 매년 이렇게 장을 보러 나와. 채소들이랑 생선들도 싱싱하고  특히 홍어는 여기 제품이 질로 믿을 만 해.” 줄다리기 끝에 5천원을 깎은 할머니의 입이 연신 방싯거린다.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지현(47·여)씨는 지난해 6월 가게를 냈다. 조그만 시장에서 3~4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처음 자리를 옮긴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하며 만류하는 사람들이 많았제. 이제 막 기반도 잡고 단골도 제법 생기기 시작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그랬어.”
  
여름철로 들어서는 비수기에 가게를 내서 처음에는 힘들고 후회도 했단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옮기기를 백번 잘한 것 같다. 
  
“요즘 손님들은 양보다 질을 더 중요시 해. 손님들이 믿고 찾을 수 있도록 좋은 제품을 제공하고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면 저절로 단골들이 생겨.” 고정수입이 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넘쳐나는 활기에 손님들이 더 몰려 웃음기가 가실 날이 없다.   
  
“여기서 5년 이상 장사를 한 사람보다 내 단골이 더 많아. 장사가 되니 안 되니, 코를 빼고 있어봐야 아무런 소용없어.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하면 진짜 그렇게 되지.” 김씨가 밝힌 영업비결이다.  
  
“재래시장이 안 된다고 하는데 좋은 제품과 신뢰만 있어봐. 떠났던 손님들도 다시 찾게 돼 있어.”
  
김씨는 “열흘 전부터 설 대목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다”며 “경제가 어렵더라도 큰 장을 보는 사람은 죄다 양동시장으로 온다”고 덧붙였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설 차례상에 오를 제수용품을 다듬는 상인들의 손길에서 정성과 깔끔함이 묻어난다. 
  
닭과 해산물을 판매하는 박현미(63·여)씨는 “새해에는 돈 많이 벌고 아이들 건강한 것이 소원”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박씨에게 양동시장은 지난 30여 년 동안 삶을 지탱케 해준 온기이자 자식들을 가르치게 해준 고마운 반려자였다.   
  
김귀순(85) 할머니는 자칭 양동시장의 터줏대감이다. 양동시장에 건물이 올라가기 이전부터 장사를 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설이 다가왔는데 오늘은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다”며 엄살이다. 그때 이태희(37·남·북구 양산동)씨 부부가 들어섰다. 김 할머니는 이들 부부와 흥정 끝에 4만5천원짜리 상을 3만8천원에 팔아 겨우 마수걸이를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김 할머니의 입이 함지박 만해졌다.
  
이씨는 “제사상으로 쓸 상을 마련하기 위해 양동시장을 찾았다”며 “명절 때에는 제수용품 마련을 위해 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을 더 이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한복집을 운영하는 김홍만(53·남)씨는 “IMF 때보다 굉장히 힘들다”며 “경제가 빨리 나아져야 소비심리도 되살아나고 시장경기도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예전에는 결혼식, 설, 추석 명절 때 한복이 꾸준하게 판매됐는데 지금은 설빔과 생활한복이 조금씩 나가는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양동시장의 시설현대화 작업으로 지붕이 생겼다. 천변에는 주차장도 생겨났다.
  
양동시장은 시설현대화로 한층 밝고 쾌적해졌다. 상인들과 손님들도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다. 상인들 스스로도 잘해보자는 분위기다. 상인회는 고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반짝 세일행사도 하고 시장홍보에도 열심이다.
  
상인들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 옛날에는 툭하면 손님들과 다투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상인의식과 서비스 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했다. ‘고객과 절대 싸우지 마라. 고운 말을 쓰자. 친절하게 먼저 인사하자. 원산지표시 제대로 하자.’ 시장을 살리기 위한 상인들의 노력이 뜨겁다. 이제 행정기관과 시민들이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