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독백
2009년의 독백
  • 강정남
  • 승인 2009.01.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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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남 여성농민

새해가 되면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소리에 어릴 때는 떡국을 두 그릇 세 그릇씩 먹고는 나이를 두 살 더 먹었네, 세 살 더 먹었네 하면서 놀았었다.

10원씩 주던 세뱃돈에도 그저 황송할 따름이고 어쩌다 50원이나 100원을 받으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나이를 40하고도 4살이나 더 먹어 버렸다.

세월이 덧없다 하지만 세월을 셀 겨를도 없이 살아온 나로선 정말 바람 같은 세월이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점점 세상을 알아가고, 신기하기만 하고 커다랗기만 하던 세상은 점점 신기하지도, 크지도 않았으며, 내가 믿는 세상만큼 싸워야 할 때도 있었고, 세상에 몽땅 제 몸을 던져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과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 잠시 물러앉고 싶다. 세상과 씨름한다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있겠는가만 이 세상 누구나 자기와 싸우며 세상을 살아가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세상 속에서 세상과 싸우며 살아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결국 관계와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생각과 행동들이 뒤엉켜 돌아가는 세상이니까.

세상과 잠시 물러앉고 싶은 마음   

내가 게을러져서인가, 세상이 점점 귀찮아 진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농사짓는 게 점점 귀찮아진다. 십수년을 농사짓고 살아도 별다른 희망도 보이지 않고 점점 퇴보하는 느낌이다.

올 설을 앞두고 배 작업을 하면서도 하나도 신이 나지 않았다. 가격은 역시나 폭락하고 경기는 어려워져 점점 배 농사 지어봤자 갈수록 힘이 들기 때문이다. 일년생계가 달린 배 농사에 매달려 아둥바둥 살아봤자 별 볼 일 없는데 즐거울 리가 없지 않는가.

예전보다 주변사람들 얼굴에 생기가 사라진 걸 느낀다. 우리 같은 사람은 떵떵거리며 사는 걸 바라지도 않는데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기만 하니 그런 것 같다.

힘들다고 말하는 건 자유지만 그 힘듦을 바꾸려 행동으로 옮기는 건 금지하는 세상이니 웃기는 노릇이다. 서울에서는 용산 철거민들의 투쟁이 끝내 죽음으로 돌아왔고 여당 대변인이란 자는 폭력시위의 끝이 되길 바란다는,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는 말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시너가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진압작전을 폈다는 것은 이미 죽음을 예견한 진압인 것이다. 더구나 시너를 확산시킬 물을 먼저 뿌리고 진압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 일임에도 무조건 폭력시위로 문제를 몰아간다. 물론 나도 이유 없는 폭력은 싫다.

아니 이유를 불문하고 폭력은 싫다. 그러나 자기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을 때가 세상은 너무나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역사의 퇴보 딛고 나갈 희망 품으며

뉴타운 개발로 마치 로또라도 당첨되었다는 듯이 모두 뉴타운 개발에 표를 몰아줘놓고 이제야 뉴타운의 진실을 보는 것 같다. 아니, 뉴타운을 찬성하고 추진하는 세력에게 이용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표가 결국 자기를 죽이는 표가 되어 돌아가는 악의 부메랑이 될 줄 누가 알았으리.

세상에 철거깡패가 버젓한 직업이 될 수 있는 사회가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다. 그들의 폭력을 전제한 직업에는 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가. 진정 폭력을 논하려면 철거깡패와 그들을 고용하는 개발업자와 개발업자를 보호하는 정권과 경찰의 폭력을 먼저 논해야 할 것이다.

결국, 개발과 파괴, 그리고 발전이란 이름하에 무수히 죽어가고 짓밟혀간 우리들이 있을 따름이다. 농촌도 결국 그 피해자가 아니겠는가.  떡국 먹고 한 살 더 먹고, 우리 힘내서 힘껏 세상을 살아나가자.

역사는 나선으로 발전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은 뒤로 밀려있지만 또 그 힘의 반동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힘차게 걷다보면 마침내 끝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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