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떠나간 친구에게-새봄을 기다리며
멀리 떠나간 친구에게-새봄을 기다리며
  • 명등룡
  • 승인 2008.12.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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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등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

친구, 잘 지내고 있는가? 유난히도 일찍 내린 첫눈 때문인지, 세차게 불어 닥치는 미국 발(發) 찬바람 때문인지, 올 겨울은 여느 때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지는구만.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 그해 겨울, 우리는 서울의 한 대학에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간판을 내걸고 새봄을 준비했지. 처음 만난 그날, 회의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자넨 “형, 시골서 올라왔는데 줄 것은 없고…”하면서 불쑥 종이가방을 내놓았었지.

나중에 열어본 그 가방 속에는 두꺼운 겨울 잠바와 장갑이 들어 있었지. 그 겨울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아마도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도 잊을 수가 없을 거네.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봄을 여는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에서 영감을 얻고, 수경이의 평양도착 소식에 환호하며, 이철규 열사의 희생에 피눈물을 흘리며 1년을 함께 보냈지.
  
변혁의 꿈, 초심 잃은 386
  
그리고 자넨 감옥으로 난 수배자로. 5년 후, 자넨 청년운동가로 난 노동운동가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청사진을 애기했었네. 그리고 또 5년이 흐르는 사이,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그 성과의 한가운데 서서 자넨 불혹의 나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전 국민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당당히 여의도에 입성을 하고.
  
출마하기 전, 조심스레 길을 묻는 자네에게 난 굳이 그 길을 가지 말라 하지 않았네. 적어도 내가 아는 자네는, 그 따뜻한 가슴을 지닌 자네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네.
  
그리고 벌써 8년이 지났구먼. 돌이켜보면 지난 8년 동안 자네나 나나 별로 한 것이 없는 같아. 자네 이후 12명의 ‘구국의 강철대오’가 여의도에서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모두가 처절한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말았네.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으려 하네. 다만 한 가지 자네들의 공통점은 초심(初心)을 잃었다는 점이네.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서민을 하늘처럼 떠받치고 진정으로 껴안는 따뜻한 가슴 말일세.
  
자네를 타박한다고 느꼈다면 용서하게나. 그러나 오해는 말게. 오히려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참혹한 고통을 지켜보면서도 별로 하는 일 없이 무기력한 나의 죄가 자네보다 더 크기 때문일세.

그럼에도 굳이 오늘 이렇게 자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겨울이 깊어갈수록 따뜻했던 자네의 가슴, 그런 가슴들이 그리워서네. 모두가 한결같이 처절한 자기생존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이 현실에서 다시 한 번 따뜻한 가슴들이 열어갈 참된 봄이 그리워서네. 
  
따뜻한 가슴 모아 새봄 열자  
  
나는 지난 여름, 세계를 놀라게 한 촛불의 힘에서 미래를 보았네. 지금도 참혹한 부당해고와 차별의 칼바람 속에서도 두 주먹 불끈 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빛에서 새 세상을 열어갈 당당한 주인공을 보고 있네. 그리고 그동안의 흩어진 가슴들을 다시 모아낼 활기찬 몸짓들을 보며 승리의 그날이 눈앞에 그려지네.
  
구동존이(求同尊異).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6·15와 10·4 선언에 동의하는 모든 민초들을 하나로 모으는 일일세. 그것만이 천길 낭떠러지로 달리고 있는 1% 강부자 정권의 무모함을 중단시키고, 99%의 민초들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네.
   
지금은 멀리 떠나 있지만 다시 돌아올 자네에게 처음으로 부치는 편지일세. 먼 이역만리의 땅, 거기는 이 겨울 찬바람의 한가운데라 더욱 춥겠지. 부디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게나. 그리고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꼭 다시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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