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개혁세력 무능한가?
민주개혁세력 무능한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1.1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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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임동규(민족무예 경당대표)

3,000억 달러 수출시대, 세계12위 의 경제대국, 국가경쟁력 11위, 과학 기술력 7위, 제5위의 외환 보유고, 반 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배출, 운동권 출신의 책임 총리의 배출 등 참여정부는 외형적으로도 그렇고 주관적으로는 치적을 올리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2000년의 6.15공동선언에 이어 10.4남북 정상회담을 성공리에 마쳐 민족 통일의 길을 활짝 열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40여일 앞둔 대선에서 있어 한나라당의 분열이 현실화 되었음에도 대선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이러한 충정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대중들이 못내 원망스럽고 야속할지도 모른다.

참여정부는 억울하다?

우리의 현대사를 개괄할 때 매시기마다 대중들의 열망을 한마디로 응축시키는 대중 언어가 있었고 그러한 응축된 대중언어를 성립 하게하는 신화(神話)가 있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그리고 ‘비 내리는 호남선’의 참사가 울분으로 치솟아 막 되어가는 자유당 정권하에서 야당 부통령을 당선 시키는 기적을 창출하였다.

한국 민주화의 상징 김대중 전 대통령마저 4수의 끈질긴 도전 끝에야 비로써 이 땅에서 진정한 의미의 선거혁명을 이룩했다. 역동적이고 순발력이 강한 우리의 민중은 또 다시 ‘바보 노무현’을 부각시켜 2002년 대선 기적을 이룩하기도 했다. 지역 이기주의 조장에도 불구하고 부산시장에 도전하는 무모함이 정직성으로 비춰지는 신화가 되어 참여정부를 성립시킨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연이은 참여정부로서는 지속가능한 개혁 안이나 신화를 창출할 소재를 발굴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여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 기용된 각료 중 몇 사람 정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에게 표를 주었을까?

민주화 운동의 동력

김대중 전대통령은 1970년대 초반에 40대 기수론으로 남녘 사회의 희망적 대안이 되었고, 그의 집권 논리는 ‘대중 경제론’으로 개발 독재의 대안으로 대중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다.

연이어 운동권에는 ‘후진국 경제론’, ‘전환시대의 논리’, ‘민족 경제론’ 등이 교과서가 되다 시피 하여 지금까지 반공 일변도의 교육으로만 세뇌되어 온 청년 학도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던져준 것과 함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고조기를 형성해 올 수 있었다. 그처럼 민주의식으로 고조된 조건에서 사회구성체 이행 논쟁은 거대한 민주혁명의 학교가 되어 5월 항쟁으로부터 6월 항쟁으로 연결 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본래의 ‘대중 경제론’을 폐기하고 유종근식 ‘대중 경제론’ 으로 대체하고 말았고, 참여정부에 들어서는 민족경제론의 제자임을 자임하는 일군의 학자들에 의하여 ‘동북아 위원회’가 마련되고 ‘동북아 균형론’이 제기되어 오다 어느 사이에 유야무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난해 조선대학에 ‘민족 경제연구소’를 들어앉힌다는 노력들이 있어서 기대해 봤더니 경제과 교수님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의 이처럼 절망적 상황은 세속 말에 “가꾼 대로 거둔다”는 연상케 한다. 그동안의 절차적 민주화는 나름대로 무수한 수공업적 가꿈의 소산이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이를 지속적으로 가꾸기는커녕 자의적으로 폐기하기도하고 변형시키는 등 지속가능한 동력을 모두 소모해 버린 어쩌면 필연적 결과가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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