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범죄의 유형
지식인 범죄의 유형
  • 채복희
  • 승인 2007.11.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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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채복희 이사

‘양복입은 독사’라고 표현되는 ‘화이트칼러 사이코패스’를 분석 연구한 ‘직장으로 간 사이코 패스’란 책이 최근 발간됐다. 산업심리학자인 폴 바비악과 범죄심리학의 대가 로버트 D.헤어 교수가 공동 저술한 이 책은 범죄자란 흉기를 품고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하는 자만이 아니라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유능한 회사원이란 것을 밝혀내고 있다.

양복입은 독사

'사이코패스(psychopath)' 란 독일학자가 1920년대에 소개한 개념으로 ‘성격 탓으로 인해 자신, 타인이나 자기가 속한 사회를 괴롭히는’ 정신병명을 말한다. 바비악 등 두 학자는 자신들의 이번 연구를 통해 현대 사회의 사이코패스 중에는 고위험·고수익 구조의 조직, 특히 현대적이고 개방적이며 유연한 조직 체계를 갖춘 기업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능력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업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엘리트이지만 동료들과 사사건건 마찰하며 조직의 규범과 가치를 파괴하고 종국에는 타인과 경쟁자들을 파멸로 몰아넣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지식인 범죄 문제는 심각하다. 대가성 청탁과 이권 개입, 학력위조, 주가조작, 고급 기술 심지어는 (외환)은행 팔아먹기 등등 이들은 보통사람들의 건강한 가치관까지 빼앗아 간다는 점에서 사이코패스와 같다.

우리나라는 교육열과 교육받은 자들의 비율이 매우 높아 그것 자체가 자랑할 만한 국가적 자산이라 할 정도다. 국민의 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아 인적 자원의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어나고 있는 지식인 범죄는 그 파장이 크고 따라서 사회의 안전망을 파괴한다. 이른바 배운 계층의 범죄는 보다 용의주도하기 때문에 발각이 잘 안되고 범행 내용도 작은 규모가 아니다. 이들 고단수의 범죄는 밝혀지면 하수들에게 전파돼 전범으로 활용된다. 이를테면 범행수법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이다.

지식인 범죄에 비해 흉기를 들고 하는 강도짓은 하수급의 범죄 수준이다. 그런데 강도는 대표적인 흉악범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틀림없는 형을 받는다. 그러나 대가성 청탁과 이권 개입, 주가 조작 이런 대형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탄과 응징은 의외로 약하다. 심지어 오랜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유야무야되기도 한다.

집단 범죄의식과 개인

그런데 같은 지식인 범죄여도 서구 두 학자가 말하는 사이코패스와 우리의 그것은 많이 다르다. 사이코패스들은 타인을 파멸시킨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식인범죄와 같지만, 그들은 개별적 정신질환의 측면에서 취급된다. 즉 사이코패스들은 몸 어딘가 병이 깃들어 있어 그러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된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따라서 범죄행위가 드러나면 개인 차원의 치료와 책임을 묻게 될 뿐, 사회 공동체가 병든 인간을 배출해 냈다는 추론까지는 불가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식인범죄가 개인의 병리 차원에서 저질러졌다고 하기엔 배후에 어른거리는 무수한 패거리 떼들의 존재를 보게 된다. 대가성 청탁은 권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며 불법 자금 조성과 이권 개입에는 정당과 같은 패거리가, 학력 위조는 그걸 묵인해온 패거리 중심의 사회적 분위기가, 주가조작이나 은행 팔아먹기에는 전문가 떼의 가공할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다. 범죄가 일어난 곳에는 소수의 몇몇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자리해 있고, 그러다 보니 그 집단에 끼어들지 못한 불안한 약자들만이 반대로 소수가 돼버렸다.

불안하고 초라한 약자 소수들은 어떻게든지 강자 집단패거리 속에 스며들기만을 바란다. 더러 홀로 남아있는 영리한 지식인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죄라면 태연하게 저지른다. 법과대학원까지 나온 사람이 수해 때 산에서 실종됐다고 사기치고 막대한 보험금을 타낸 사례가 최근 발각되었다. 행적으로 봐서 그는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뚜렷한 패거리 배후도 없는 듯 하니 그간 ‘소수 약자’쪽에 속해온 보통급 지식인 범죄자라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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