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도, 문화중심도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문화수도, 문화중심도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0.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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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연작칼럼]혼돈의 문화수도 ③문화, 접근방법을 바꾸자

경주를 ‘세계역사문화도시’로 만들자는 특별법이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9월 11일에는 부산을 ‘아시아 영상문화중심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도 발의됐다.

문화관광부장관이 5년마다 종합계획을 세우고, 대통령소속 조성위원회와 문화관광부 추진단을 설치하며, 특별회계를 편성하는 핵심내용이 광주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특별법과 똑같다.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앞 다투어 법제정을 약속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핵심인 영상문화를 부산이 담당하게 되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역할은 무엇이 남을까? 각자 자기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겠지만, 광주문화중심도시에 대한 반발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광주 문화수도에 대한 다른 도시의 반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주 부산은 물론이고, 전주 나주도 ‘광주문화수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광주는 전국에서 으뜸이고 싶었지만, 다들 자기가 으뜸이라고 했다.  

‘문화수도’로 출발했던 명칭이 ‘문화중심도시’로 바뀌게 된 표면적 이유는 ‘다른 도시의 반발’이었다. ‘문화관광부의 광주 이전’ 요구가 달갑지 않았을 문화관광부 관계자들에게, 다른 도시의 반발은 문화수도라는 개념을 바꾸는 좋은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것이 ‘문화중심도시’ 다. 그러나 문화중심도시라는 개념은 광주의 기대를 반영하지 못했다. 광주는 문화로 으뜸이고 싶었지만, ‘문화중심도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광주 안에 있는 여러 기능 - 정치·경제·사회·문화 - 가운데 ‘문화’가 중심인 도시라고 했다. 광주가 이런 개념을 수용할 리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다. 

여럿 가운데 최고가 되고 싶은 광주의 기대를 일정부분 수용하면서도, 범위를 아시아로 확대함으로써, ‘문화행정의 중심지’라는 실질적 의미를 제거하고 상징적인 의미만 남게 하는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 결과 ‘문화관광부 광주 이전’ 주장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거대한 신기루일 뿐,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부산 경주 전주 나주도 인정하지 않는 일을, 북경, 도쿄, 홍콩, 타이베이가 인정하겠는가? 광주의 그런 주장에 관심이나 있을까? 광주에 아시아문화의 전당이 들어선다고 하자. 그렇다고 아시아문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광주로 올까? 그 속에 북경 자금성의 웅대함과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득 찬 역사, 그리고 동경 록본기의 생동하는 현대문화를 다 담을 수 있을까?

그런 일은 광주 뿐 만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도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왜 광주는 신기루를 쫒는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탓이다. 문화는 ‘한 사회의 지식, 신념, 행위의 총체’라고 정의된다. 대대로 이어져 온 공동체 삶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문화를 상대적으로 서열을 매겨 누가 으뜸이라거나, 누가 중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 자기 문화를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인류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질 가운데 하나다. 영어가  세계적으로 쓰인다 해도 자기나라 말이 편하고, 아무리 좋은 옷도 자기 몸에 맡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무디스가 국가신용도를 평가하고, 국제투명성기구가 국가청렴도를 조사해 순위를 발표하지만, 어떤 기관도 나라의 문화에 서열을 매기지는 않는다.

광주문화수도와 유사한 개념으로 잘못 알려진 유럽의 문화수도는, 매년  도시를 바꿔가며 열리는 행사이지, 광주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특정도시에 부쳐진 칭호가 아니다. 그럼에도 유럽의 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가 광주의 문화수도와 유사하게 들리는 것은 ‘Capital’이란 다의적인 단어를 ‘수도’라고 직역한데서 오는 혼선일 뿐이다. 

그럼에도 ‘문화중심도시’를 외치는 것은 모든 것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생각하는 성장우선주의의 천박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를 ‘한 공동체의 삶의 총체’라고 이해한다면, 문화는 무엇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목적이며,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대상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문화를 통해 어떻게 우쭐댈 것인가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어떻게 풍부하게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느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논의해야 할 문화의 핵심이다.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아시아문화를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특질을 계승, 발전, 확산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문화는 그렇게 쌓여가는 것이지, 어느 순간 일조일석에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의 전당이 세워진다 해도, 어줍지 않게 아시아문화를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표현하고 고양하는, 참 문화의 공간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참 문화’를 보기 위해 광주를 찾는 외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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