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문화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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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10.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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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연작칼럼]혼돈의 문화수도 ②본말전도된 문화수도 논쟁

사실과 진실의 차이, 기자를 꿈꾸던 시절부터 늘 마음에 두고 있는 생각꺼리다. 세상의 일상을 구성하는 사실들이 모두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일을 전하는 기자라는 직업,  맞닥뜨린 사실이 정말 ‘진실’인가는 늘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었다.  

광주문화수도 조성사업은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를 사흘 앞둔 2002년 12월 14일, 노무현 후보가 직접 밝힌 것이니, 분명 사실이다.

문제는 이 공약이 노무현후보의 공약집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후보 노무현>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토대를 잡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광주문화수도’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의 참모들은 이런 공약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사안을 두고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무현후보는 지지율이 낮은 영남권 공략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남지역 민주당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그래도 후보가 한 번은 호남지역을 방문해야한다는 것이었다. 12월 14일 노무현 후보는 일정을 바꿔 광주를 방문했다. 급작스런 일정 변경이었으니, 별다른 준비가 있을 리 없다.  그 때 민주당 광주시지부는 ‘광주문화수도조성’을 제안했다. 광주공원 연설을 겨우 10여분 앞두고 있었던 일이다. 

이 날 오후 광주공원에서, 노무현후보는 이렇게 외쳤다. 

“충청을 행정수도, 부산을 해양수도, 광주를 문화수도로..”

2005년 국정감사장에서 박광태 광주시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문화수도 공약을 잊고 있었다’는 발언을 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과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그러나 선거를 겨우 사흘 앞 둔 대통령후보가 갑자기 한 연설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문화수도’는 정말 대통령공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논의의 핵심은 ‘문화수도 조성’이 진짜 공약이었느냐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공약이 급작스럽게 제시되면서, 그 공약의 타당성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는 데 있다.

참여정부 뿐 만 아니라 광주시도 아무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문화수도 조성방안은 고사하고, 문화수도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광주시는 대통령이 공약했으니 알아서 해달라는 수준이었고, 참여정부는 구체적인 방안도 없이 매달리는 광주시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 후로 5 년 동안 ‘문화수도건설론’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려왔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끝나도록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지역에 무수한 환상만 흩어놓았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혹은 문화산업으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혹은 문화의 전당으로 광주도심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들만 횡횡하고 있다.

시민이 빠진 논의, 권력의 오류는 주도권다툼으로 이어졌다.

2003년 5월 18일. 취임이후 처음 광주를 방문한 노무현대통령은 전남도청부지에 파리의 ‘퐁피두센터’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노무현대통령이 ‘퐁피두센터’를 만들겠다고 한 그 자리는 5.18 기념관이 들어 설 예정지였다. 10년 전인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항쟁의 중심지 전남도청에 5.18기념관을 지어야한다’는 광주시민의 요구를 수용했다. 그래서 전남도청을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도 그 자리에 민주인권타워를 건립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런 곳이 하루아침에 문화의 전당으로 바뀌었다. 

광주시는 문화의 전당 건립 계획이 발표될 때까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참여정부 관련자들이 광주시를 논의에서 배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수도와 관련된 문광부의 핵심인사는 ‘문화수도 건설의 공(功)을 박광태시장에게 주지 않겠다’는 내심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문화수도냐 문화중심도시냐’, 또는 ‘전당 중심이냐 산업 중심이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해 온 참여정부와 광주시는, 전당의 설계내용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2005년 말 당선작이 결정된 이후 1 년 여 동안, 논쟁과 시위가 이어졌다. 전당을 지하광장으로 만드느냐 고층건물로 올리느냐의 문제는 정말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머리를 깎는’ 시위로 이어졌다. 

이런 논란은 설계 작이 결정되기 전에 이미 해결되었어야 했다. 2005년 6월 설계응모자들에게 제시된 <아시아문화전당 설계지침>은 주변 도로 여건을 고려한 건물 높이의 한계와, 분산 형 건물을 우선한다는 내용을 포함되어 있었다. 대형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조건을 이미 기획단이 제시했던 것이다. 광주시가 그 내용을 몰랐거나 뒤늦게 대응했을 뿐이다.

끝없을 것처럼 보이던 광주시와 참여정부의 갈등은 지난 8월 이후 수습국면으로 들어섰다.  다른 곳에 랜드 마크를 만든다는 타협안이 제시되긴 했지만, 전당의 핵심설계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문화중심도시조성과 관련된 참여정부의 ‘핵심인사’들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정치적 타협이란 얘기가 나온다. 애초부터 내용보다, 일의 진행과정이 더 관심꺼리였다는 지적도 있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문화로서의 ‘시민의 삶’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질은 잊고, 곁가지들만 분분했다. 그래서 드는 악몽 같은 생각이다.

처음엔 옳은 길은 줄 알았으나 잘못된 길로 들어섰고, 나중엔 돌아가려해도 돌아갈 수도 없을 만큼 너무 많이 와버렸고, 그래서 종국에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그냥 이리저리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정병준 기자는 KBS광주방송총국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이 글은 KBS광주방송총국 홈페이지 강추! KBS광주 코너에도 연재돼 있음을 알립니다. 첫 칼럼 이후 필자의 개인사정으로 연재가 다소 늦춰졌으나 앞으로 2~3일 간격으로 6편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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